해귀
해귀라고 해서 귀신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해귀는 조선시대 당시 흑인용병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는데 최초의 기록은 1394년 태조 3년부터 나오게 된다.
해귀들이 활약한 사건은 정유재란으로 1598년 왜놈들의 조선 재침공 당시 명나라 장수 팽신고가 선조에게 해귀를 자랑하면서 나오게된다.
(이 당시 참전한 해귀들은 포르투칼 출신일것이라는게 학계의 정설.)
팽신고는 선조와의 연회자리에서 "조선에서 15만여 리나 떨어진 곳에서 온 용감한 병사들입니다."라고 자랑을 했다고 한다.
이 해귀들을 본 선조는 "조선은 구석에 있어서 저런 신병 (神兵)을 보지 못하였지만, 대인의 덕택에 이를 보니 황은이옵고 이제 곧 무식한 왜놈들을 무찌를수 있겠소이다."라고 했다고한다.
이 당시 실록에 따르면 "노오란 눈동자에 얼굴빛은 검고 사지와 온몸이 검으며 턱수염과 머리는 양털처럼 짧게 꼬부라져있다.
이마는 대머리처럼 벗겨졌는데 한 필이나 되는 비단을 머리에 말아 올려서 썻다." 라고 적혀있다.
유성룡의 서애집을 보면은 "해귀들은 키가 커서 말을 타지 못하고 수레를 타고 다녔다."라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있었던 흑인 용병들은 별다른 전공은 쌓지못했다고한다.
늑대부대 일명 "낭병"
낭병(狼兵)의 기원은 명조 중엽, 광서 지방에서 유래, 광동 일대 초모 이래의 군대,
명조의 정예 부대다.
주요 구성원은 장족, 요족 등 소수민족이 주를 이뤘고,
토관의 직접 통제를 받았다.
낭병은 병적(兵籍) 안에 없고, 원래 비정규 군대로, 용맹하고 잘 싸웠기 때문에, 명나라 왕조는 여러번 그들을
각지의 비적 토벌과 왜구에 대항하는 전쟁에 썼다.
그러나 군 기강이 엄하지 않아서 백성의 두려움와 원망을 받았다.
만력야획편에 따르면 "토사병들은 다스리기가 어렵고 지방에 해를 끼치는 것이 참혹하여 쓰지는 못하겠다."라고 한다.
명나라에서는 당시 이자성의 난보다 낭병들이 더 자국민들을 괴롭힌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을 구하는데 병사 5천을 보냈다." 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도 너무 참혹하여 쓰지못한 병사들을 조선에 보냈다.
이후 되돌아 갔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료에는 안 나왔있음. 못찾겠다.
이후 명나라에 돌아가 민병대형식으로 유지되다가 청나라가 되어서 없어졌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