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몽골과의 전쟁에서 진짜 제대로 막아냈던 사례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 채널의 영상을 저도 몇번 본적이 있지만 고려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주제도 있죠. 공통점은 몽골의 주력을 상대한것이 아니라는것과 지리적인 거리나 기후나 지형적인 특수성으로 막았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잘랄웃딘이나 완안진화상처럼 일개전투의 승리로서가 아니라 저지의 의미에서 진짜 제대로된 방어성공을 이끌었던 최초 사례는 이집트 맘룩군의 아인잘루트 전투였지만 이것도 사실 총대장이었던 훌라구가 몽케칸의 사망으로 쿠릴타이 참석을 이유로 주력이 빠졌다는 점에서 진짜 진정한 의미의 방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건 마치 우구데이칸의 죽음으로 역시나 쿠릴타이 참석을 위해 바투-수부타이 원정군이 유럽원정에서 빠진것과 비슷합니다.
몽케 사망이후로는 몽골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되면서 칭기즈칸서부터의 계속되는 확장이 끝이납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답니다. - 요즘 젊은 것들…….- 잘 아시죠? 요즘 젊은 이들. 늙은 것들에 속하는. 저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걱정 붙들어 매셔요. 역사도 비교적 잘알고 있답니다. 다만. 현대적 관점에서 바라보다보니 늙은이와 젊은이 사이에 서로 시각 차이가 있는거죠. 시각차이 즉 생각이 다른거죠. 당신의 글에서.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요즘 젊은 이들. 잘.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할거고요.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는. 세계를. 주름 잡으려 합니다. 믿고 밀어줘야죠. 기를. 살려줍시다.
고려의 수도는 개성,송도,개경으로 표기해야 하는데 중국에서 조선의 수도를 칭하던 '한성'으로 표기했네요
위치도 개성이 아니라 현재의 서울 위치고 시대도 안 맞는 지명인 거죠
개성과 강화도는 뱃길이 연결되어 있었고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지척인데 영상에는 강화도와 삼별초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 것도 아쉽고요
완전 잘못 알고 계신데 조선의 수도 공식 명칭은 '한양'이었고 '서울'도 수도의 의미로 통상적으로 쓰였지만 '한성'은 공식 명칭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한성부'는 지역을 의미하고 관청으로 존재했던 거죠 '한성'만 따로 떼어서 수도의 명칭으로 쓰지 않았어요 왜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조선시대 공식 수도 명칭은 '한양'이고 '한성부'는 관청인 거죠 도대체 조선의 수도가 언제 한성이었다는 건지 진짜 어이가 없네요
중국에서 최근까지도 '한성'을 서울의 명칭으로 고집해서 논란이 된 적도 있는데 오랜 세월 서울 한강 일대를 '한성'이라고 했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쓰는 거지 조선에서 '한성'을 수도 명칭으로 쓴 적이 없어요
저기요 이양반 역사를 창조하네
네이버에 한양 한성만 처도 줄줄이 나오는데 왜 어거지를 쓰심??
검색할줄 모르심??
고려 멸망 이후, 조선 왕조가 창업하며 개성에서 천도하면서부터는 공식 명칭은 한성부가 되었고 공식 문건에서 한양이라는 옛 이름은 거의 사라졌으나, 상류층의 입말로는 계속 남았다. 물론 서울이라는 이름도 입말로 함께 쓰였다. 1668년의 하멜표류기에 "조선사람들은 수도를 sior(서울)이라 부른다"고 나온다.
친절히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 먹는 거면 사람이 아닌 거죠
한성은 조선의 수도 명칭이었던 적이 없어요
한성은 옛 서울의 행정구역 한성부를 말하는 거고 백제 위례성을 한성이라고 한 거죠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조선의 수도 명칭은 한성이 아니라고 이 양반아 도대체 얼마나 꼴통인 거야
왜 '한성'과 '한성부'를 동일시하지 모르겠는데
'한성'은 백제 위례성을 말하는 거고 그 시대를 한성백제라고 하죠 오래도록 쓰인 지명인 것도 맞고 그래서 중국은 그 명칭을 최근까지도 고집한 거죠
조선의 수도 공식 명칭이 '한양'인데 그걸 '한성'이라고 표기하면 당연히 오류가 맞죠
태조4년 한양부를 한성부로 개칭했다 라고 역사가 말하는데
뭔 중국 타령 이야 도대체 한성은 조선 정식 서울 명칭이라고 이양반아 뭔 자꾸 중국이 나와 개 또라이네 한성부로 개칭이후 한양이란 지명은 사어가 되고 일부 상류층만 사용했다 라고.,.하는데 도대체 근거는 없이 중국 끌어 와서 개소리야 ㅋ 중국끌고 오면 뭐 잇어 보임>?
한양 이란 지명 자체가 일반대중에겐 사어가 댔다는데 뭔 개소리야 이거 진짜 개 ㅄ이네 그리고 한성 지명은 조선 개국이레 사용하던 이름인데 그동안 단한번도 그걸 공식적으로 바꾸자고 한적이 우리가 없어서 그냥 일반적으로 사용하던걸 2005년 개칭하자고 해서 首尔(首爾, 수이, Shǒu'ěr, 서우얼) 로 바뀐거고 또라이야 뭔 중국이 반대를해 그냥 지들은 쓰던데로 쓴거고 우리가 바꿔 달라해서 바꾼건데
중국 국영 통신사인 신화통신 보도에서도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하여, 한국 수도의 중문 명칭으로 '首尔'을 사용하는 것이 국제 관례에 맞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외국 지명 번역 규정에도 부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같은 중화권 국가인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도 2005년 초반부터 빠르게 항공사들을 시작으로 漢城(汉城)에서 首爾(首尔)으로 명칭을 바꾸기 시작했고, 2005년 중반부터는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쉬운건 고대기록이 대부분 소멸했다는점.
거기에 가장 크게 기여한것이 40년에 다다르는 고려의 대몽항쟁시기..
임진왜란이랑 다르게 제주도까지 다다르는 전국토가 불탔고
모든사찰과 기록물이 유실됨. 너무너무 아까운 역사.
거기에 비하면 여요전쟁이나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작은 전쟁이라고 봐야죠
결과적으로 고려후기부터의 기록물은 상당히 남아있지만
그전시대의 우리 기록유산은 대부분 소실된게 뼈아픕니다.
삼국시대랑 남북국시대, 후삼국, 고려건국사의 많은 부분이
아직 연구성과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에요.
한국 역사서에 없지만 일본 역사서에는 몽고와 연합하기 이전에 고려가 일본에 조공을 요구하다 반대하자
고려 병선 500척을 이끌고 수차례 일본 큐슈를 침략하고 수많은 도시를 파괴하고 인질 수백명을 끌고 온것도 있는데
일본에선 이걸 백련초의 난이라고 불리는데 고려는 17년간 일본에 통상을 요구하고 무력으로 침입하였다 기록함.
고려사가 조선시대 쓰인거라 이부분이 누락 됨. 참 안타까움
고려왕조는 항복을 하지않앗고 몽골이랑 종전 조약을 체결하고 여몽간 전쟁을 끝을 낸거이고
보통 말하는 항복 한것이 아님 ,,
그러니 왕실및 국토는 고스란히 보존에 성공한 사례이고
몽골이 고려를 통치도 못하였고 고려측은 무려 세금도 안냄,,병력의 부역도 안나갓고
육지와 연결이된 나라중에 몽골과 전쟁에서 지키는데 성공사례가 아주 드물엇고
더욱이 고려는 국력도 약한 나라 엿는데 이를 성공한거임,,,세계 전사상 아주 대단한 성취 엿음
고려는 잘해봐야 정규군이 10만명대이고,,예비군전력으로 급조한 농민들을 모집한 20만명대 그런거야,,이들 농민군은 훈련이 거의 안되어서 전투력기 약하다고 ,,그냥 숫자만 늘려서 만든 임시적인거야
몽골 침략 시기 같으면 고려인구는 400만명대로 내가 기억을 하는데
그시절 농업국가는 국력은 인구에 비례를 해서 평가 하는데,, 뭔노무 국력이 강한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