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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D] 해외유튜버 "한국이 몽고와 맞서 방어한 방법" 해외반응
등록일 : 24-04-27 13:48  (조회 : 23,659)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고려시기에 몽골의 침략에 대한 영상입니다.
몽골과 맞서다가 역사에서 사라진 국가가 많았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도 흥미로운 내용인 것 같습니다.



한국이 몽골과 맞서 방어한 방법-중세 역사

<내용 요약>
고려의 13세기 몽골제국에 대항해서 40년간의 전쟁.
당시 고려 무신 정권시기.
몽골의 강대함을 볼때 놀라운 저항.
고려의 게릴라 전술, 외교술.
해안과 섬, 산악 지대로의 피난.
결국 무신 정권이 무너지고, 몽골의 지지를 받는 왕권이 확립됨.



<댓글>

@hulagu3068
다음에는 고구려와 수나라 전쟁, 그리고 거란의 침략도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WorldWithoutApples
결국 고려가 몽골에 완전히 왕조가 무너지지 않고 문화적 자율성을 유지한 것 자체가 작은 승리.


ㄴ@kevinkevinkevin1909
유럽처럼 몽골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한국은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한국은 몽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


ㄴ@Jinisinsane
로마가 그랬던 것 처럼, 그 나라 문화는 그대로 놔두고, 세금이나 뽑아내는 정책이었던거지.


@Righthand_
이런 수준 높은 영상 너무 고마워.
이 유튜버 제작자들에게 항상 고마움.


ㄴ@mohitgoyal15
누구도 돈도 지불하지 않고 보는거니까.


@soumyadiptamajumder8795
"승리가 힘들면, 타협 해라"
비록 엄밀히 말해서 몽골이 승리했지만, 이 전쟁은 몽골과 고려 양측의 심리 게임과 비슷했어. 
결국 몽골이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니, 평화조약을 맺은 매우 드문 경우임.


ㄴ@Uncle228
몽골이 특히 바다에 취약해서.


ㄴ@gagida1829
@Uncle228/몽골이 일본에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다 보여주니까.


ㄴ@johnthiam2446
몽골은 송나라와의 전쟁때문에 한국과의 문제는 빨리 끝냈어야 했어.


ㄴ@EchoVortex713
@johnthiam2446/송은 한국 만큼 몽골에 골치거리는 아님.
한국은 항복후에도 계속 반란을 일으켜서 몽골을 끊임없이 괴롭힘.


ㄴ@kevinkevinkevin1909
반면 송은 몽골에 의해 완전히 파괴.
송의 왕과 충신들이 죽었고 사람들은 노예로 끌려가고,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어.


ㄴ@poil8351
한국은 나중에 일본과의 전쟁에서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일본은 몽골보다 더 잔인해서, 보이는 사람들 전부 죽였어.
근데 한국의 해군이 일본보다 훨씬 강력했음.


ㄴ@user-ql8dv5sk6y
그 후로 몽골 공주가 고려 왕비가 계속됨.
마지막 원의 왕비도 고려 귀족의 딸이있고.
몽골이 고려를 특별하게 대했던 것 같아.


ㄴ@user-wr6zt9lh7n
고려가 자기 문화를 계속 유지한 건, 쿠빌라이를 왕이 되기전부터 강력히 지지해서 였어.
결국 왕이 된 쿠빌라이는 자기 딸을 고려왕에게 시집까지 보냈으니까.


@philtkaswahl2124
"몽골:한국은 섬이 아니니까, 쉽게 정복할 수 있어"
"한국:그건 아닐 걸."


ㄴ@matts3425
섬은 아니지만 반도임.


@ronjohnson6916
재미있는 내용이야.
결국 유능하고 실익을 중시했던 지도자들이 있어서 완전 망하는 건 막은 듯.
그래도 마지막에는 리더십이 부족해서 항복한거고.


ㄴ@MM22966
이건 지도자들을 위한 변명임.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ㄴ@poil8351
임진왜란과 비교하면 그래도 덜 피해를 봄.
몽골과의 전쟁에서 한국은 아주 교활하게 외교적인 전략을 펼쳤어.


ㄴ@jaydaytoday3548
그래도 패배는 패배.
영상에 나온 것 처럼, 몽골의 끊임 없는 침략으로 백성들이 많이 죽는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는 섬으로 도망감.
이게 무슨 실익이 있겠어?


ㄴ@magoochito
@jaydaytoday3548/몽골과 전쟁했던 다른 왕국과 한국을 비교해봐.
다른 나라는 다 망해서 역사에서 사라졌잖아.


ㄴ@chvhndrtntlr3482
유능한 지도자라고?
내 생각에 과거에는 유능한 지도자는 없었어.
그냥 역사가들이 만들어 낸거야.


ㄴ@user-vi4px6ob7o
저런 노력으로 결국 고려왕은 몽골 황제의 사위가 됨.


ㄴ@kevinkevinkevin1909
몽골은 원래 항복하지 않은 나라에게는 자비를 보여주지 않아.
다른 나라에서는 왕과 충신들을 다 죽였으니까.
한국에서는 그게 불가능.
만약 몽골이 한국에서도 똑같은 짓을 하려고 했다면, 고려가 평화협정을 맺지도 않았을거야.


@Jennie-he6nn
가장 기다렸던 영상인데, 정말 고마워.


@mahir5024
이 영상은 모든게 다 완벽!


@Karznax
정말 잘 만들었다.
다음에는 한국의 삼국시대 영상도 만들어 줄 수 있어?
그 시기에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것 같더라고.


@Ali-fx6jd
한국 역사 너무 재미있다.
계속 더 만들어줘.


ㄴ@rogerjamespaul5528
"나의 나라"같은 한국 역사 드라마 추천함.
고려말이 배경인데 두 친구가 적이 되는 이야기야.


ㄴ@rogerjamespaul5528
@rogerjamespaul5528/그 드라마,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음.


ㄴ@Ali-fx6jd
@rogerjamespaul5528/'나의 나라', '정도전' 다 봤어.
근데 나한테는 '정도전'에 비교되는 수준의 드라마는 없더라고.


ㄴ@Boryang.
@Ali-fx6jd/나도 '정도전' 보고 싶다.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육룡이 나르샤'는 봤는데, 거기서도 정도전 역할은 꽤 대단하더라고.


ㄴ@dukeheavens9990
@Boryang/그런 드라마에 몽골의 침략이 포함되어 있는거야?


ㄴ@Ali-fx6jd
@dukeheavens9990/아니야.
'나의 나라'는 고려말 이야기임.


@user-rd5sz4rg8j
동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친, 고려와 거란의 전쟁도 만들어줘.
강감찬(거란을 무찌른 장군)은 이순신과 맞먹는 사람 이었어!


ㄴ@KC-bt3wd
k드라마로 나온 것 같은데.


ㄴ@user-rd5sz4rg8j
@KC-bt3wd/그 드라마 다 봤는데, 진짜 재미있었어.


@crokette8908
몽골이라는 끔찍한 적에게 성공적으로 저항한 나라를 보는 건 항상 흥미로움.


@Brandonhayhew
한국은 방어전에 특화된 나라같아.


@brokenbridge6316
몰랐던 내용인데, 너무 재미있었어.


@user-qr3og8ko7v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후에, 몽골은 다른 나라에 한 것 처럼 고려를 파괴하지는 않음.
오히려 고려의 풍속을 그대로 존중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임.


@johntillman6068
몽골이 한국을 수십년 동안 침략하는 동안에도, 폴란드까지 세 번이나 공격했어.
또 일본에도 2번이나 침략시도.
짧았지만 몽골은 진짜 대단한 제국임.


@robbabcock_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몽골과 더 치열하게 싸웠구나!


@MysticChronicles712
몽골 침략에 맞서서, 한국의 전략적으로 훌륭한 방어 전술을 보여주는 영상이네.


@trevorthai1685
한국의 중세 역사를 더 알고 싶어.
그들의 복잡한 정치와 이웃나라와의 갈등은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


@xocysp
한국은 반도국가이고 모든 방향에 적으로 둘러쌓여 있어.
지금도 중국, 북한, 일본.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 전쟁사는 방어 전술이 매우 흥미로움.


@minamotonokuroyoshitsune3237
드디어 몽골과 고려의 전쟁이 나왔구나.
항상 보고 싶었던 내용이었어.


@frederikbeckers8923
내가 항상 알고 싶었던 역사.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전의 역사를 더 만들어줘.


@Numba003
전혀 몰랐던 내용.
냉전 이전의 한국 역사는 거의 몰랐거든.


@Ali-fx6jd
고려와 거란 전쟁,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제발 만들어줘.


@chappy3125
한국의 삼국시대 역사도 보고 싶다.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싸운 기간이라서 매우 역동적이어서 분명히 재미있을거야.
기간이 매우 길기는 하지만, 간단히 요약이라도 해서 만들었으면 좋겠어.


@chinobandito7625
만약 고려 지형이 평평했다면, 짦은 시기에 몽골에 점령당했을거야.
산, 섬, 정글 지형이 몽골과 싸우는데 가장 효과적임.


@user-cq4ko5bn9q
결국은 물리칠 수 없는 적이리면 최대한 버티다가, 적절한 시기에 항복하는게 현명한 방법.


@ishudshutup
양쪽 모두 힘든 전쟁같아.
근데 왜 몽골이 고려를 다 파괴하지 않은거야?
보통 몽골에 저항하는 국가는 완전히 불태워서 없어지잖아.
송나라도 수십년간 저항하다가 지배층이 완전히 죽고 가혹한 파괴를 당했음.
몽골이 한국을 특별하게 생각한건가?


ㄴ@skyereave9454
고려과 완전히 패배한게 아니라 조건을 달아서 항복해서 그럼.
장기간 양쪽이 고생한 후에 이뤄진 평화협정.
또 몽골이 한반도를 장기적으로 점령하기도 힘들어.
그 땅은 지형 자체가 험해서 왔다갔다하기가 힘들거든.


ㄴ@user-ql8dv5sk6y
고려왕의 왕비들이 몽골의 공주들이었고, 몽골제국의 마지막 황후는 고려사람이었음.
몽골이 고려를 특별히 다르게 대우 했던 것 같아.


@monkeymoo87
일본은 바다, 한국은 특히 북쪽에 산악 지형이 방어에 도움이 되었을거야.
몽골은 평원에서 특화되어있는 유목민이니까.


@kaleidologistzan8079
몽골같이 큰나라가 작은 나라의 저항을 뚫지 못할때는 진짜 굴욕적이었을거야.
그리고 결국 이름뿐인 승리로 결론나서 더 타격이 컸을 것 같고.


@infolover_68
한국은 방어 기술이 탁월함.
중국, 몽골, 일본과의 전쟁에서 그 모습을 보여줬어.




번역기자: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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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박 24-04-27 13:54
   
잘봤어요~
호센 24-04-27 13:58
   
해외친구들이 서서히 한국을 아는 걸 넘어서 , 중세, 고대 까지 흥미를 가지는 건 좋은 일임..

이제 우리도 IP 의 확장성 덕에.. 한국의 고스트 오브 스시마 같은 게임을 싸커 펀처같은 기업들이 만들어 줄지도 모를 일이지..
다잇글힘 24-04-27 14:00
   
전성기 몽골과의 전쟁에서 진짜 제대로 막아냈던 사례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 채널의 영상을 저도 몇번 본적이 있지만 고려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주제도 있죠. 공통점은 몽골의 주력을 상대한것이 아니라는것과 지리적인 거리나 기후나 지형적인 특수성으로 막았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잘랄웃딘이나 완안진화상처럼 일개전투의 승리로서가 아니라 저지의 의미에서 진짜 제대로된 방어성공을 이끌었던 최초 사례는 이집트 맘룩군의 아인잘루트 전투였지만 이것도 사실 총대장이었던 훌라구가 몽케칸의 사망으로 쿠릴타이 참석을 이유로 주력이 빠졌다는 점에서 진짜 진정한 의미의 방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건 마치 우구데이칸의 죽음으로 역시나 쿠릴타이 참석을 위해 바투-수부타이 원정군이 유럽원정에서 빠진것과 비슷합니다.

몽케 사망이후로는 몽골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되면서 칭기즈칸서부터의 계속되는 확장이 끝이납니다.
     
멀더요원 24-04-27 23:51
   
항상 님이 쓰신 글을 볼 때 마다 잘난 지식 자랑 하시는 거 느껴지지만..
어째 매번 무슨 패턴 처럼 대한민국이나 우리의 역사를 깔아 내려 보려 하는 그 재수없음에 항상 놀랍니다..
대단하시네요..
          
다잇글힘 24-04-28 00:29
   
댁같이 머리속이 좀 비어계신분들  속 뒤집어놓는게 제 취미죠. 이런 댓글이 달린걸보면서 언제나 쾌감을 느낍니다.

^^
               
멀더요원 24-04-28 00:35
   
ㅋㅋㅋ 
설마 했는데 진짜배기셨네요 ㅋㅋㅋ
                    
다잇글힘 24-04-28 00:37
   
굳이 어그로를 시전하시는데 그에대한 답례정도는 기본이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풀어놓는것 때문에 누군가가 기분나쁘시다면 그냥 계속해서 기분나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 쓰잘데기없는 자격지심따위에는 그냥 이런식의 말장난 최고죠

제가 지식풀어놓는 취미도 일가견이 있지만 사람속 뒤집언놓는 말장난에도 좀 일가견이 있다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멀더요원 24-04-28 00:56
   
ㅎㅎㅎㅎㅎ
                         
다잇글힘 24-04-28 01:06
   
ㅋㅋㅋㅋㅋㅋ

이런 단순무식 랠리도 나쁘진 않죠.
                         
촐라롱콘 24-04-28 03:32
   
본인과 국가-민족의 자존심을 위해서는 역사왜곡도 서슴치 말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지닌 듯한 이들이 몇몇 보이는 것 같네요. ^^

정작 그 당시 권력층인 무신정권과 고려왕실은 백성, 국가보다는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유지 또는 왕권회복을 위해 몽골과 척을 지거나
또는 그와는 정반대로 몽골과의 협력은 물론 귀속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멀더요원 24-04-28 15:35
   
ㅎㅎㅎ
잘 알았습니다 ㅎㅎㅎ
앞으로는 제발 엮이지 말기를 빌어 봅니다  ㅋ
                         
다잇글힘 24-04-28 23:43
   
본인 스스로 엮었으면서 엮이지좀 말자라고 하면 ㅋㅋ 뭔가 지식의 많고 적음에 컴플렉스가 있는 유형들이 있죠. 댁같은 유형이 몇몇 있어서 댁처럼 나댔걸 여러번 보았으니까.

이런것도 한국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재밌는 현상입니다. 교육의 나라답게 이런쪽으로 민감한 사람들이 많죠. 이것도 문화현상으로 재밌는 토론주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
     
nigma 24-04-28 00:28
   
흠, 내용이 맞고 틀리고를 떠너 국가간 전쟁이 무슨 링 위에서 경기나 일기토 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서술하시는 지...
          
다잇글힘 24-04-28 00:35
   
링위나 일기토를 하는데서 이런식으로 서술을 하던가요? 살다살다 위에 멀더요원같은 애들은 많이 봤지만 이런식의 지적은 처음 들어보네요. 무슨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달하는것처럼 읽히시나요? 전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건데?
          
열받어 24-04-28 13:28
   
나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네요. 전쟁이란 것이 원래 상대가 싫어하는 장소/시간/방법으로 싸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데.
               
촐라롱콘 24-04-28 14:08
   
고려가 전쟁기간 내내 치밀한 전략으로 싸웠다고 하기에는

몽골군의 규모 자체가 몽골군의 주공에 해당하는 금나라, 호라즘, 러시아-동유럽,

남송 원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몽골군 규모가 작았습니다.

1,2,3차 침입같은 초기의 경우에도 2~3만 규모에다가

고려가 그로기상태에 빠진 5~6차 침입 당시에는 고작 5천명의 몽골군이 

남해안 일대까지 포함한 고려 온 전역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특히 대몽항쟁 후반기에 몽골군이 5천 병력 규모로도 고려전역을 휩쓸 수 있었다는 건

이미 이 시기에 이르면 몽골군은 뒤로 물러나 있고 몽골에 귀순하거나 빌붙은 고려인들에

의해 전쟁의 상당부분이 치뤄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고려인 대 고려인끼리 열나게 치고박고 싸운 격이지요~~~!!!
     
레종프레소 24-04-29 15:01
   
제대로 막아낸적이 없다?
너님이 아직 한국말을 쓰게 있는게 제대로 막아낸 증거지...

그리고 뭔 개소리가 이렇게 많지?

몽골군의 규모 자체가 작았다느니
2~3만 규모였다느니.
5~6차 침입 당시에는 고작 5천명의 몽골군이
남해안 일대까지 포함한 고려 온 전역을 휘젓고 다녔다느니..

그게 몽골군의 능력이고, 몽골 칸과 장수들의 군세파악능력이 허접한 증거지...

고려도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현대 대한민국의  7기동군단을 과거로 소환해서 전쟁했으면 몽골 쳐발랐겠지.

무슨 몽골의 병력동원이 적었다는 둥 저런 하나마나한 개소리를 하지?..주력이 아니었다는 둥, 소규모 침공이었다는 둥..

히틀러가 유보트 2,000대만 있었으면 2차대전 이겼겠지
히틀러에게 티거 전차 10,000대만 더 생산할 수 있었어도 유럽을 정복했겠지
v2미사일 한 10만기만 더 생산할 수 있었으면 전쟁 이겼겠지.....같은 하나마나한 헛소리를 하지?

작은 지식쪼가리를 내세우길 좋아하는 듯...
헛똑똑이지...

다른 외국인들이 인정해도 잘난 역사 지식쪼가리가 대가리에 잔뜩 든 너님은 그냥 고려는 젓밥이었는데 ,몽골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 뿐이예요 라는거잖아? 그지?

이런 등신은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할 듯..
그 투쟁의 결과는 항상 아의 승리란다, ㄷㅅ님

역사는 객관? 절대 객관? 이런거 없음...역사는 항상 아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아의 입장에서 해석하며, 아의 입장을 역사이성이라고 보는거임....모지리님..

안중근, 윤봉길의사가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열사고 호국영령인 것도, 역사는 항상 아의 입장이 중심이 되기 때문임.

몽골의 군사력을 고려에 집중할 수 없음을 기회로  항전했으면 그게 탁월한거지
고려 북쪽이 기마병 10만, 20만 동원하는게 쉬운 지형인 줄 아니? 말은 등신아 사람 처럼 줄맞춰서 못다녀..말한마리가 달릴려면 얼마나 넓은 공간이 필요한데

하~~ 대한민국에는 이런 골이 탱탱 빈 헛똑똑이들이 졸라게 많아서 탈이야..
한국을 까면, 한민족을 까면 지가 좀 객관적이고, 글로벌하며, 리버럴한 사고를 가진 날카로운 시각을 가진 자로 착각하는 개등신들이 너무 많음...비굴한 놈들의 특성인줄은 모르고
스리슬쩍 24-04-27 14:15
   
지금의 몽골을 보면 차라리 중국만이라도 제대로 잡아먹었어야.
그리 다 이기고다녔어도 바다가 없으니
구레나룻 24-04-27 14:17
   
잘봤습니다
트레져sn 24-04-27 14:31
   
반대로 점점 역사에 무지해지는 이 나라의 한심한 젊은것들..
지금 이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 폐해를 알수있슴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팬텀m 24-04-27 15:46
   
그게 애들탓일까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거지.
     
미켈란젤리 24-04-27 16:06
   
누굴 보고 배웠을까?
          
테킨트 24-04-27 20:02
   
태극기
     
kfx2 24-04-29 08:02
   
소크라테스가 그랬답니다. - 요즘 젊은 것들…….- 잘  아시죠?  요즘 젊은 이들.  늙은 것들에 속하는. 저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걱정 붙들어 매셔요.  역사도 비교적 잘알고 있답니다.  다만. 현대적 관점에서 바라보다보니 늙은이와 젊은이 사이에 서로 시각 차이가 있는거죠.  시각차이 즉 생각이 다른거죠. 당신의 글에서.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요즘 젊은 이들. 잘.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할거고요.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는. 세계를. 주름 잡으려 합니다.  믿고 밀어줘야죠.  기를. 살려줍시다.
양철북 24-04-27 14:38
   
나중엔 주원장에 원군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고려가 제지함으로써 명나라가 건국 되도록 간섭
명나라가 건국 된 후 명나라가 원을 공격하지도 못하도록 제지
사실상 중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이성계가 다 말아먹음
돼지콜레라 24-04-27 14:47
   
고려의 수도는 개성,송도,개경으로 표기해야 하는데 중국에서 조선의 수도를 칭하던 '한성'으로 표기했네요
위치도 개성이 아니라 현재의 서울 위치고 시대도 안 맞는 지명인 거죠
개성과 강화도는 뱃길이 연결되어 있었고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지척인데 영상에는 강화도와 삼별초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 것도 아쉽고요
     
호로파 24-04-27 16:38
   
저기 표기는 분명 잘못 됏지만 한성은 조선시대 공식 서울이름임
한성부 = 서울  한성부윤 = 서울시장
한양은 수도이전 서울을 칭하던 명칭이지만 수도 이전후 태조때 한양부에서 한성부로 개칭 돼었고 1910년 대한제국 멸망후 경성부로 개칭되고 한성부는 없어짐
뭔 중국 타령임
          
돼지콜레라 24-04-27 18:46
   
완전 잘못 알고 계신데 조선의 수도 공식 명칭은 '한양'이었고 '서울'도 수도의 의미로 통상적으로 쓰였지만 '한성'은 공식 명칭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한성부'는 지역을 의미하고 관청으로 존재했던 거죠 '한성'만 따로 떼어서 수도의 명칭으로 쓰지 않았어요 왜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조선시대 공식 수도 명칭은 '한양'이고 '한성부'는 관청인 거죠 도대체 조선의 수도가 언제 한성이었다는 건지 진짜 어이가 없네요 
중국에서 최근까지도 '한성'을 서울의 명칭으로 고집해서 논란이 된 적도 있는데 오랜 세월 서울 한강 일대를 '한성'이라고 했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쓰는 거지 조선에서 '한성'을 수도 명칭으로 쓴 적이 없어요
               
호로파 24-04-27 19:48
   
저기요 이양반 역사를 창조하네
네이버에 한양 한성만 처도 줄줄이 나오는데 왜 어거지를 쓰심??
검색할줄 모르심??

고려 멸망 이후, 조선 왕조가 창업하며 개성에서 천도하면서부터는 공식 명칭은 한성부가 되었고 공식 문건에서 한양이라는 옛 이름은 거의 사라졌으나, 상류층의 입말로는 계속 남았다. 물론 서울이라는 이름도 입말로 함께 쓰였다. 1668년의 하멜표류기에 "조선사람들은 수도를 sior(서울)이라 부른다"고 나온다.
                    
돼지콜레라 24-04-27 19:55
   
친절히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 먹는 거면 사람이 아닌 거죠
한성은 조선의 수도 명칭이었던 적이 없어요
한성은 옛 서울의 행정구역 한성부를 말하는 거고 백제 위례성을 한성이라고 한 거죠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조선의 수도 명칭은 한성이 아니라고 이 양반아 도대체 얼마나 꼴통인 거야
                         
호로파 24-04-27 19:56
   
뇌피셜로 멍멍이소리 지껄이지 말고 근거를 들고 와요
                         
돼지콜레라 24-04-27 20:00
   
왜 '한성'과 '한성부'를 동일시하지 모르겠는데
'한성'은 백제 위례성을 말하는 거고 그 시대를 한성백제라고 하죠 오래도록 쓰인 지명인 것도 맞고 그래서 중국은 그 명칭을 최근까지도 고집한 거죠
조선의 수도 공식 명칭이 '한양'인데 그걸 '한성'이라고 표기하면 당연히 오류가 맞죠
                         
호로파 24-04-27 20:30
   
태조4년 한양부를 한성부로 개칭했다 라고 역사가 말하는데
뭔 중국 타령 이야 도대체 한성은 조선 정식 서울 명칭이라고 이양반아 뭔 자꾸 중국이 나와  개 또라이네 한성부로 개칭이후 한양이란 지명은 사어가 되고 일부 상류층만 사용했다 라고.,.하는데 도대체 근거는 없이 중국 끌어 와서 개소리야 ㅋ 중국끌고 오면 뭐 잇어 보임>?
                         
돼지콜레라 24-04-27 20:34
   
한양부와 한성부는 행정구역이고 관청이라고 이 답답아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 먹으니 답이 없다
수도 명칭을 바꾼 게 아니라고 진짜 븅신이 난독증까지 있네
저걸 수도 명칭을 바꾼 거라고 해석하는 대가리면 더 이상 상종할 가치도 없다
한성부의 府가 관청 부야 이 멍청아
                         
호로파 24-04-27 20:57
   
한양 이란 지명 자체가 일반대중에겐  사어가 댔다는데 뭔 개소리야 이거 진짜 개 ㅄ이네 그리고 한성 지명은 조선 개국이레 사용하던 이름인데 그동안 단한번도  그걸 공식적으로 바꾸자고 한적이 우리가 없어서 그냥 일반적으로 사용하던걸 2005년 개칭하자고 해서 首尔(首爾, 수이, Shǒu'ěr, 서우얼) 로 바뀐거고  또라이야 뭔 중국이 반대를해 그냥  지들은 쓰던데로 쓴거고 우리가 바꿔 달라해서 바꾼건데

중국 국영 통신사인 신화통신 보도에서도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하여, 한국 수도의 중문 명칭으로 '首尔'을 사용하는 것이 국제 관례에 맞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외국 지명 번역 규정에도 부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같은 중화권 국가인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도 2005년 초반부터 빠르게 항공사들을 시작으로 漢城(汉城)에서 首爾(首尔)으로 명칭을 바꾸기 시작했고, 2005년 중반부터는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뇌피셜 그만 처 돌리고 아가리 싸메
감독 24-04-27 14:55
   
잘 봤습니다
ashuie 24-04-27 15:24
   
아쉬운건 고대기록이 대부분 소멸했다는점.
거기에 가장 크게 기여한것이 40년에 다다르는 고려의 대몽항쟁시기..
임진왜란이랑 다르게 제주도까지 다다르는 전국토가 불탔고
모든사찰과 기록물이 유실됨. 너무너무 아까운 역사.
거기에 비하면 여요전쟁이나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작은 전쟁이라고 봐야죠
결과적으로 고려후기부터의 기록물은 상당히 남아있지만
그전시대의 우리 기록유산은 대부분 소실된게 뼈아픕니다.
삼국시대랑 남북국시대, 후삼국, 고려건국사의 많은 부분이
아직 연구성과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에요.
원형 24-04-27 15:29
   
쿠빌라이를 지지했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고 (그럼 쿠릴타이는?)
그 전에 징기스칸의 선조가 고구려라는 배경이 있음.
고대의 명분은 지금 한국인들의 인식과는 또 달랐던 것.

청나라의 한족이 조선의 선비에게 어떻게 고구려가 그렇게 강력했느냐 라고 물어봐서 어리둥절 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고
뉴라이트 토왜들 따우는 고구려와 한국은 관련이 없다는 쓰래기짓을 하고 있지만
     
팬텀m 24-04-27 15:47
   
헛소리는 머릿속에서나 하세요
          
Bada 24-04-27 17:30
   
ㄹㅇ 저분은 항상 저렇게 뇌절 댓글만 달더군요 ㅋㅋ
굿잡스 24-04-27 15:30
   
전쟁이 빈번해지는 철기시대에

■고조선 말기 열국시대를 정리하면서 고조선 동방문명권을 재정립하고 나온게 고구려군요.

고(구)려(KOREA)는 700년 전신을 합쳐 900여년의 장구한 왕조였고 그동안 망한 지나(China) 왕조만 수십개. 그리고 당시 고구려가 제압 휘하 부용세력들은 이후

■지나 왕조부터 유라시아를 뒤집어 놓던 날고 뛰던 전투종족들이었군요(거란  후대 요제국, 실위 후대 몽골제국, 말갈(여진)  후대 금,청제국등)
팬텀m 24-04-27 15:45
   
이야~ 외국인들이 한국 역사에도 관심을 가져주고 고맙고 반갑다~
옛날 동아시아 지역에서 "고구려(옛 고려)"의 위상이 엄청났죠.
몽골도 그 고구려의 후신이 우리에게 항복했다~ 이러고 명나라도 고구려의 후손이 왜구한테 털릴리가 없잖아? 구라 ㄴㄴ 이러고.
굿잡스 24-04-27 15:53
   
■삼국시대 고(구)려든 중세 고려도

단순히 방어만 탁월해서 당시 저런 세계 최강의 유목 기병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게 아니군요.

중세 유럽의 영,프간 백년전쟁등을 보면 알겠지만 두 국가의 합친 총병력이야 고작 몇 만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미 동북아는

■세계 최강 기병의 유목문화권과 전형적 농경의 황하 지나(China)문화권 그리고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농경과 기마가 공존하던 우리 고조선 고구려 동방문명권이 고대에서 부터 수십만 대군이 충돌했고

6,7세기의 우리 고구려와 선비족 왕조인 통일왕조  수,당의 백여년간의 대전은 (고수 2차대전은 근대 이전에선 세계 최대의 300만 이상의 대군이 충돌)

가히 세계 대전급의 동방과  서토간의 엄청난 문명대전의 양상이었군요(양진영간의 수많은 세력들이 결집되어 100만 대군급으로 거듭 충돌이 발생)


이때문에 고(구)려는 이런 엄청난 대군을  초기에 지연시키고 중앙의 대군을 끌고 와서 쓸어버리는 식으로 대응했고

이때문에  고구려는

■만주 요동 일대에 엄청난 밀집 방어의 강력한 중대형  산성등을 쌓는 고도의 성곽술과 수성전도 탁월했지만

■야전 기동, 기병전력도 상당한 수준의 나라였기에 세계 최강 기병 전력들을 제압 혹은 철저히 궤멸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였군요.

그리고 이런 전통은 이후 중세 고려에서도 유지됩니다

고(구)려(KOREA)철기병은 3세기 동천왕 시기에 이미 활약하기 시작하지만 5세기 광개토태왕시기부터 개마무사라는 전신 갑옷과 등자를 활용 세계사적인 전투사에서 살펴보면 의미가 깊는 군사조직이다.

이런 ■등자는 기마족들은 기존 헝겊이나 가죽 혹은 없이도 탈수 있었지만 세계사적으로 일반 정주민족이 등자없이 말을 타기에는 힘든 시절이였고

5세기 고구려 개마무사는 ■철을 이용 본격적 대량의 철갑 기병을 양산

이게 이후 북방 기마민족의 군사 조직에 영향을 주고 이런 흐름은 이후 서구에서도 등자를 이용한 본격적 기사 계급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5세기의 고구려는 지금의 몽골지역의 '유연'(柔然)과 동맹을 맺고 ■등자 등 철제무기 문화를 전해준다

이후 유연은 자신들의 밑에 복속했던 돌궐에 패퇴해 동유럽으로 도망가 아바르족이 됨.

■이 와중에 서양에도 등자와 중갑병이 전해졌고, 이어 유럽 중세기사의 탄생을 가져오게 된다
     
굿잡스 24-04-27 15:58
   
■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삼국사기


■북조사를 연 북위도 고(구)려(KOREA)의 준식민지급.

북위가 고구려와 동맹 강화를 위해 당시 고구려 귀족 가문과 혼인을 하는데 이 문소황후의 아들이 8대 북위 선무제로 등극.

이후 지지 기반이 약했던 고구려계 선무제는

자신의 외삼촌인 고조와 고현을 불러 들이고 아예 고구려인만 따로 추대하는 고려국대중정(高麗國大中正)이라는 벼슬까지 만들어 북위 조정내에 고구려파벌 붕당을 만들어 장악.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마칸더브이 24-04-27 16:08
   
잘봤습니다
굿잡스 24-04-27 16:08
   
역사상 유라시아를 수시로 제패하며 쓸고 단닌 이들은 동북방의 북방 기마족들이군요(또한 이들은 동서양 문화의 매개자였다)

만주 요하를 근거지로 하던

우리 고조선의 ■단군이라는 명칭은
몽골도 믿던 탱그리신 즉 천신 하늘에서 나온 어원으로 이런 북방의 제종족을 아우러던 지배자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고)조선 건국 신화는

이후 13세기 유라시아를 제패하는 몽골이나 기타 북방민족등

유라시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게세르신화등에서도 고조선 신화의 흡사축소판이군요(열도의 신화에도 큰 영향을 미침)

또한 현재 중공등 동아시아의 대표적 민간신앙인 ■도교  역시도

이런 우리의 고조선 건국신화와 신선 사상에서 영향을 받아 나온 것들이군요.


우리 고(구)려 초기 수도 인근 압록강 일대에는 우리 대(삼)한족(예ㆍ맥ㆍ한)인 예맥족이 건설한

■이미 기원전 4000경에■직경 100미터 이상 아파트 10층높이의

거대 피라미드식 3층 적석총의 만발발자 제단이 발굴. 이후

500여년의 시간차를 두고

■만주 요서 일대로 진출하면서 순차적으로 등장합니다

중공 북경 천단공원에 세워진 ■원구단의 원형이 다름 아닌

■한국인 선조들이 이미 기원전 4000여년 경에 압록강 유역에서 건립한

3층의 거대 원구단인 만발발자제단 유적에서 영항을 받은 것이군요.


고조선 중심지인 만주 요하일대의 고조선 관련
■기원전 2000년경의 하가점하층문화권은

우리 고구려 성곽의 주요 특징인 치의 원형
■석성만 1300개,토성 600개로 2000여개가 밀집 실제 발굴되고 있군요.

■이 일대는 1.5km마다 유적이 발굴될 정도로 인구가 밀집했고 이미 지상 주거형에 벽돌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이게 기원 전 2000경



■상나라 무정 때의 일시적인 세력 약화는 고조선이 강남과 산동 지방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고조선은 진시황 통치 전까지는 강남과 산동에 자리했었다. 

ㅡ18세기 프랑스 신부 레지 고조선 지나(China) 사료
     
굿잡스 24-04-27 16:13
   
■ 장발영(張發潁)의 저서 <봉황토템 동이인 및 그 문화의 공헌>- <중공 사회과학집간>2001년 2기- 에서

■동이족 사람들은
- 깃털달린 활과 화살을 발명했으며,
- 문자를 창조했으며,
- 청동기를 제작하고,
- 철을 단련했으며,
- 배(舟)와 수레(車)를 만들었고,
- 농업을 발전시키고 치수(治水)를 하였다.


동북아 고대문명의 산실은

■만주 요하를 근거지로 하던 우리 고조선의 동방문명권이군요(신석기시대 만주 요하일대는 이미  황하보다 앞선 정교한 옥기류부터 하늘에 제를 지내던 거대 제단, 천문관측 유적등이 출현.

우리 고조선 건국 신화를 보면 단군시대 이전

하늘의 아들 환웅의 ■신시(神市)라는 도읍이 나오는데 신시 즉 신의 도시, 영어로 The city of god 이란 상당히 광오한 단어가 나옴.

이정도의 명칭을 도읍에다 부친 기록은 세계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고 함부로 부칠 이름이 아니군요.

그만큼 당시 동아시아에서 압도적 선진문명인의 자부심을 반영.
     
굿잡스 24-04-27 16:14
   
■고조선, 고구려 건국신화에 담긴 천하관

홍익인간 재세이화  천손강림 광명사상


하늘의 자손임을 자각하고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外孫)이다. 오늘 도망하여 달아나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라고 하였다.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이 건널 수 있었다.〔이후〕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해오던 기병들은 건널 수 없었다.

ㅡ삼국사기 고구려본기


■ 아, 옛날 시조 추모왕께서 처음으로 (나라의) 기틀을 세우셨도다. (추모왕은) 북부여 출신이시니, 천제(天帝)의 아들이시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다. 알을 가르고 세상에 내려오시니 나면서부터 거룩한 △을 갖추셨도다

ㅡ광개토호태왕비문(廣開土好太王碑文)


“단군(檀君)은 실로 ■동방의 천황(天皇)인데,

그 사우(祠宇)도 잘 정비하고 있는지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근신(近臣)을 보내 치제하고자 하니 입시한 승지가 가서 거행하고, 사전(祠殿)이 허물어진 것을 수리하지 않았으면 또한 본도(本道)에 신칙하여 즉시 수리한 다음 장계로 보고하도록 하라.”

檀君, 實爲東方之天皇矣。其祠宇, 亦安保其能修治耶? 欲爲遣近臣致祭, 入侍承宣, 其往擧行, 祠殿如不修廢, 亦爲申飭本道, 俾卽修治, 仍爲狀聞, 可也。

ㅡ승정원일기  영조 8년
굿잡스 24-04-27 16:33
   
■단군신화의 환웅은 지상에 강림한 太一의 化身인 뇌신으로 해석된다.

또한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圖像으로 이해하면, 천신과 수신의 연금술적 결합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고조선의 태일 신앙을 후대에 계승한 흔적으로 간주된다.


중국 도교의 雷神 신앙은 이러한 고조선 지역에 잔존한 무교 문화가 중원에 영향을 끼친 전형적인 사례로 이해된다

그러한 증거는 대표적인 중국 도교의 뇌신인 뇌성보화천존의 정체를 해명하는 가운데 발견된다

뇌성보화천존의 이야기는 ■풍백과 우사 등이 등장하는 서사적 구도의 측면에서 고조선 지역의 신화를 집약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부여와 고구려에서 천제사상이 북방계 신화의 사상적 근원으로 작용하면서 제의도교의 민간 신앙으로 이어지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송대에 등장한 중국 남방의 신소파 경전인 玉樞經 등은

■고조선 지역의 신화에 잔재한 무교적 요소를 도교적으로 변용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ㅡ고조선 지역의 무교가 중원 도교문화에 미친 영향



지나(China)의 대표적 민간신앙인 ■도교의 옥황상제등도

■우리 고조선 건국 신화의 천손강림 신화가 흘러들어가서 나온 카피판이군요.

지나의 대표적 민간신앙이자 구복신앙인 도교도 노자의 도학보다는

불로장생을 바라던 진시황에서 근간하는데 사마천 사기를 보면 이걸 산둥 우사(도사)가 ■발해만 일대에서 술법이 흘러들어왔다고 기록

이때문에 당시 진시황이 신선이 사는 봉래산 드립치면서 남녀 수백명을 보내는게

바로 우리쪽이다(춘추전국시대 당시 편찬된 지리서인 산해경에는 만주 ■발해만 일대 고조선 위치를 정확히 기록)

■동해의 안쪽 북해(발해)의 모퉁이에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 朝鮮

ㅡ산해경


“평양은 본래 ■선인왕검의 택지이다"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

ㅡ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북아도 유라시아와 다이렉트로 교류가 되던건

내륙 황하 지나 지역이 아니라■북방의 초원길이였군요. 그래서 이곳이 이른 시기부터 동서양 문명의 고속도로 였고

■우리 고조선의 중심지였던 만주 요하일대의 조 기장을 키우던 정주 문명인이 이른 시기부터 이런 유라시아의 다양한 교류와 접촉에서 황하 지나인보다 유리한 위치였기에

하, 상 시기 황하 하한족들이 아닌 ■동방족이 이미 문명을 주도.



예전에 터키 괴베클리 테페 지역에서 1만년 전 종교시설이 발견되어 발칵 뒤집혀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조선 요하일대도 ■대규모의 국가적 거대 피라미드형의 종교, 천문관측 제단등이 신석기시대부터 발굴(이런 대규모는 지나의 황하일대에선 나오지 않음)

이런 시설이 왜 중요한가 하면 세계사를 봐도 알겠지만

■고대나 근현대도 이런 종교 시설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형성되기 때문이군요.

이를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성읍국가(도시국가)에서 연맹체로 중앙집권국으로 점차 변모합니다

이건 세계사적으로 매우 이른 즉 ■그 지역 모태문명급 지역에는 일반적일 정도의 원툴이군요.


중공 학자들이 황하 일대에 이걸 찾으려고 얼마나 뒤졌는데도 찾지 못하다

이게 지들이 전통적 이민족 지역이라는(■19세기까지도 중공인들은 만주 요동으로 제대로 들어오지도 못했음)

■우리 고조선 중심지 요하일대에서 대거 나오다 계속해서 동쪽으로 더 가니

한반도 압록강 일대에도 더 앞선 시기의 유적들이 수십개가 발견됩니다(이게 만발발자 제단 유적등임)
체사레 24-04-27 16:50
   
잘 봤습니다
지하 24-04-27 16:51
   
한국 역사서에 없지만 일본 역사서에는 몽고와 연합하기 이전에 고려가 일본에 조공을 요구하다 반대하자
고려 병선 500척을 이끌고 수차례 일본 큐슈를 침략하고 수많은 도시를 파괴하고 인질 수백명을 끌고 온것도 있는데
일본에선 이걸 백련초의 난이라고 불리는데 고려는 17년간 일본에 통상을 요구하고 무력으로 침입하였다 기록함.
고려사가 조선시대 쓰인거라 이부분이 누락 됨. 참 안타까움
골드에그 24-04-27 18:05
   
잘봤습니다.
이쉬타 24-04-27 18:28
   
고려왕조는 항복을 하지않앗고 몽골이랑 종전 조약을 체결하고 여몽간 전쟁을 끝을 낸거이고
보통 말하는  항복 한것이 아님 ,,
그러니 왕실및 국토는 고스란히 보존에 성공한 사례이고
몽골이 고려를 통치도 못하였고 고려측은 무려 세금도 안냄,,병력의 부역도 안나갓고
육지와 연결이된 나라중에 몽골과 전쟁에서 지키는데 성공사례가 아주 드물엇고
더욱이 고려는  국력도 약한 나라 엿는데 이를 성공한거임,,,세계 전사상 아주 대단한 성취 엿음
     
굿잡스 24-04-27 18:39
   
??

중세 고려가 무슨  국력이 약했다는건지?ㅋ

당시 세계사적으로 고려처럼  ■2,30만 대군을 뽑아내고

몽골제국에 앞서 몽골을 철저히 피지배 복속시키고 있던 거란의 요제국  정예 세계 최강 10만 기병 대군을 단순히 수성전이 아니라 육박전 다이 다이로 궤멸 시킬 수 있던 나라가 몇개나 된다고 생각하는지??ㅋ 모르겠군요.

(위에도 지적했지만 당시 유럽의 중세 영,프간 총 뽑아낸 병력의 최대치가 고작 수만명임)

여기에 이후 ■요,송을 멸망시켜버리는 대금이 완성되기 직전의 여진족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20만 원정군을 보냈던게 중세  고려의 국력이였군요(이때문에 신라계 황제와 발해인 연합의  대금이 북방의 패자가 되고도 고려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음)
          
이쉬타 24-04-27 18:49
   
크크 고려가 국력이 강해 ??,,,에라이 아무리 우리 조상이라도 허위선전은 그만하자
여몽전쟁 내역을 살펴보구서나 그런 소리를 하든가,,,
               
굿잡스 24-04-27 18:51
   
??

아쉬타>그러니까 당시 세계사적으로 2,30만의 대군을 뽑아 운용하던 나라가 몇개가 되냐고 묻지 않음?ㅋ

이정도 기초도 모르면서 어설픈 쉰소리인지?? 쯧
                    
이쉬타 24-04-27 19:12
   
고려는 잘해봐야 정규군이 10만명대이고,,예비군전력으로  급조한 농민들을 모집한  20만명대 그런거야,,이들 농민군은  훈련이 거의 안되어서  전투력기 약하다고 ,,그냥 숫자만 늘려서 만든 임시적인거야
몽골 침략 시기 같으면 고려인구는 400만명대로 내가 기억을 하는데 
그시절 농업국가는 국력은 인구에 비례를 해서 평가 하는데,, 뭔노무 국력이 강한가 그래??
                         
굿잡스 24-04-27 19:20
   
??ㅋ

16세기 후반 임진왜란 시기 열도 통일한 왜군은 몬 다 중앙군인줄 아는지?ㅋ

세계 어느 곳도 기본 정예 중앙군에 전시에는 10대부터 60대까지 징집이 특별났던건 아님(옆 지나도)


그리고

당시의 인구 조사도 군역 가능 인구의 단순 단촐 통계 조사가 일반적이라 실제 인구는 더 많았을 것이 정론임.


그리고

신당서등을 봐도 삼국시대에 이미 고구려, 백제만도 각각 호수가 70여만호로 1가구당 5명으로 잡아도 각각 350만명에 이르던 인구력이였음.


한반도가 영토는 언뜻 작아보일지라도 쌀 생산력 자체가 높아서 당시 세계사적으로 인구력이 높던 나라 중 한 곳임(그외 이른 시기부터 세계사적으로도 중앙집권적 행정 체계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군 동원력도 향상)
                         
굿잡스 24-04-27 19:38
   
그리고

삼국시대 고구려는 국내성, 평양성(장안성),한성의 3경 체재로

백제도 사비성과 신라의 서라벌은 당대 유럽의 최대도시라는 로마에 견줄 정도의 대도시 인프라를 이미 갖춘 나라였음

고(구)려(KOREA)는 초기 건국의 주체가 된 5부가 태왕이 거하는 신성한 수도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점하며 천하를 지배하는  행정의 대도시로 발전하는데

이런 5부의 대도시에는 욕살을 파견해서 다스림


서쪽 지방의 대성인 오골성만 해도  ■봉황산성으로도 불렀는데 둘레 16km이고,성벽이 산능성이에 원형이 가깝게 건설된 포곡식산성이기 때문에 면적이 16㎢ 정도가 되는 당시 세계사를 봐도 엄청난 대도시급임.


그리고 이런 대성의 소비를 받쳐주고 방어를 지원하는 중,소형 성들도 여러개 포진.(북쪽은 부여성을 중심으로)

남북국시대에도 발해는 거대한 5경 체재로

남국인 신라는  서라벌을 중심으로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재편.

이 서라벌은 남북국 전성기에는 울산인근까지 도시가 팽창  100만에 이르던 로마 이상의 거대 도시로 발전.

이후 중세 고려 역시 이런 거대 서라벌을 왕건이 전쟁없이 흡수하며 동경으로

수도인 개경은 물경 50만의 대도시로 이에 버금가는 평양의 서경과

현재의 서울인 남경의 대도시와 중소도시들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했던게

당시 고려의 국력과 도시문명 수준이였음.
               
양철북 24-04-28 04:21
   
고려는 동아시아의 패권국중 하나.맞음
몽고시절에.밀렸다고 고려사 전체를 싸잡다니
     
굿잡스 24-04-27 18:49
   
■전연의 맹

1004년에 지나(China) 송나라(宋)에 침입한 요나라의 성종과 이를 막기 위해 북상(北上)하였던 송이 체결한 굴욕적 강화조약.

지나 송은 군비로서 요에 매년 비단 20만 필, 은(銀) 10만 냥등을 바치는등 굴복.


■귀주대첩

지나 송을 굴복시킨 북방의 패자인 세계 최강 기병 군단인 거란의 전사적 요제국은 고려와 3차례 이상의 대전을 치르게 되는데

1019년(현종 10)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요나라 정예 10만을 귀주에서 육박전으로 크게 물리친 전투(■10만에 살아 돌아간 거란군은 고작 수천에 불과했다)

■ 귀주대첩의 의의

비록 전사적 요제국은 지나(China) 송은 굴복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고려와 3차 대전을 치르면서

3차에선 맞다이 회전에서 요나라 정예 10만이 고려에 철저히 궤멸되면서 폭주하던 요나라를 억제시켜버림.

이로 인해 동아시아는 고ㆍ요ㆍ송 3강체재의 세력 균형으로 재편되면서 100여년 평화 치세가 구축

나아가 ■현 만주 요동반도 이동(동쪽 영역)을

고려가 자치하게 되면서

현 만주 동북삼성 일대의 발해 후신국과 여진족 부족들이 대거 고려에 귀속

■고려는 이들 만주 일대 북방영토를 기미주 형식으로 다스리게 되군요.
     
굿잡스 24-04-27 18:54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맞닿았으며, 북쪽으로는 옛 거란 지역과 접경하였고,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맞닿아있다. 


高麗南隔遼海, 西距遼水, 北接契丹舊地, 東距大金. 


ㅡ고려도경


고려는 서북으로 당 이래 압록을 경계로 했고 동북은 선춘령을 경계로 삼았다. 대개 서북으로는 고구려에 다다르지 못했으나 동북으로는 그것을 넘어섰다


ㅡ고려사-지리지


(윤 5월) 갑자일에 거란에서 오윤판관 야율골타를 파견하여 동북 여진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 하였으나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고려사 5권, 현종 17년


동여진의 도령들이 귀부하며 고려 군현으로의 편입을 청하다


 ㅡ『고려사 』1073년 문종 27년 2월 21일(음)


귀부해 온 동여진인들을 귀순주에 소속시키다. 한림원에서 아뢰기를, “동여진의 대란(大蘭) 등 11개 내부자(內附者)들이 11개 주(州)가 되기를 요청하니, 각각 주기(朱記)를 하사하고 귀순주(歸順州)에 소속시키십시오.”라고 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ㅡ『고려사 』 1073년 문종 27년 9월 4일(음)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했는데, 동쪽 끝에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倭國乃日本國也,本名倭,既耻其名,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今則臣屬高麗也).”


ㅡ송대의 저명학자 곽약허(郭若虚)의 『도화견문지图画见闻志』1080년



고려시대 압록강(鴨淥江)이 현재의 요하(遼河)였으며 여기가 고려의 서북계다. 


■압록강을 표기할 때 '鴨淥江'과 '鴨綠江'을 구분하지 못해 고려시대 국경선에 큰 혼란이 왔다


ㅡ '고려 서북 국경에 대하여 - 요·금 시기의 압록(鴨淥)과 압록(鴨綠) 중심으로' 중


옛 역사서에 고구려 사람들의 위생수준은 모두가 깨끗하다고 하였는데, 지금도 그러하다.

 ■ 고려인들은 중국인의 몸에는 때가 많다고 비웃는다.

ㅡ송나라 사신이 쓴 [고려도경]중



동란섭필, 송사 외국열전 고려전 등을 보면 고려 사신이 지나(China) 송나라에 가서 마치 깡패처럼 행동했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소동파가 고려를 맥적(貃敵)이라 부르며 비난할 정도로

고려와의 무역이 ■지나 송나라의 재정에 부담을 주던게 실상임.(고려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지나 송나라의 메뉴얼은 1,300장에 달할 정도)
     
굿잡스 24-04-27 19:14
   
보니 역사에 기초 상식 없이 이야기하는게 보이는데


■13세기에 가서야 몽골평원에서 징기즈칸이라는 걸출이 나타나면서  통합되어 전성기를 맞이하는게 몽골부족이지만


이들은 과거에는 약소부족이였음.

우리 ■고조선 고구려 시대에는 만주에서 실위라는 이름으로 피지배민으로 궁핍하게 살다 현 몽골 평원일대로 서진해서 양치기 유목으로 전업(우리 고구려 태왕 앞에선 대가리도 못들고 단니던 시절임)


이후 ■거란 요제국에게도 철저히 피지배민으로 살다

■신라계황제와 발해인 연합의 금나라가 요,송을 멸망시키는  동북아의 지각 변동속에서 점차 몽골이 풀려나면서 성장.

■이후 대금이 서토 지나인들을 본격 지배 경영하기 위해

■당시 대금의 국무총리격인 우리 발해계 장호가 북경에 중도 건설을 총지휘. 요동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화북일대에 북방세력의 터전을 미리 닦아 둠.

■이후 징기즈칸의 몽골족이 빠르게 세력을 불려가며 주변지역을 복속시키고

밀려난 남송과 협공해서 대금을 양 사이드에서 멸망시키고는 몽골이 낼름 화북을 먹게 된 것임.

■그리고 이런 북방의 거란 요제국부터 대금이 닦아놓은 화북을 기반으로

몽골의 쿠빌라이가 내부분열 시기에 대칸에 오를 수 있던 원동력  근거지가 되었고

이후 남송까지 멸망시키면서

몽골의 쿠빌라이가 원의 건국자가 된것(이당시만해도  화북일대에는 우리 발해인들도 여전히 정체성을 유지하며 이주해 있던 시기임)
     
굿잡스 24-04-27 20:07
   
13세기에 가서야

이런 약소부족이였던 몽골이 전성기로 득세할때는


고려는 이미  무신집권기로 잦은 쿠테타와 권력 유지 사병화로  고려 황제는 허수아비로 전락 정치가 이원화되면서

■2,30만 대군을 뽑아내던 막강했던 고려 군 편제가 씹창나서지

■고려가 정상적이였다면 몽골도 이전 요제국등 처럼 상당한 출혈을 감내해야 했을것임.


그리고 당시 고려로 쳐들어 온 몽골군 병력이 적은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병력수가 많을때는 질이 낮은 현지병을 대거 징집해서임)

이 요동 고려 방면의 탐마치는 살리타이와 디주, 탕우타이, 푸타우라는 4명의 장수가 이끌었고

이는  ■호라즘 왕조를 초토화시킨 초르마칸이 이끄는 탐마치가 4개의 투멘( 만호)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과 대응하던 주력 정예병들이었음.

이런 당시 날고 뛰던 몽골 정예병이

처인성 전투에서 고려 승려와 노비로 구성된 일개 민병대에 사살된

사령관인  ■살리타이는 본래 케식(친위대)의 일원으로 초유의 사건까지 벌어졌던 상황임.

하여튼 최씨 무신집권 세력은 지들 보신으로 강화도에 쳐박혀 있다보니 육지는 고려 민병대가 막던 황당한 일들이 연거품 나오다보니

결국 고려황제도 무신집권기를 끝내기 위해 몽골과 손을 잡고 강화조약을 체결(당시 몽골 내부 투쟁시기라 쿠빌라이를 지지해준 게 큰 역할도 함)


더구나 동아시아사에서

고수 고당 대전사의 영향력과 족적은 후대 몽골제국의 ■쿠빌라이가 중세 고려의 세자와의 당대 발언만 봐도 알 수 있음

"당 태종이 몸소 정벌했으나 복속시킬 수 없었는데 지금 세자가 스스로 오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고려사절요 1260년 원종 1년 3월 17일

■“의관은 본국(고려)의 풍속을 좇아 상하 모두 고치지 마라. 개경 환도 시기는 고려의 형편대로 하라….”(<원고려기사> 1260년 6월)

한마디로 고려의 제도와 풍속은 존중하겠다는 약속으로 이를

■‘불개토풍(不改土風)’ 혹은 ‘세조구제(世祖舊制)’라 한다

■“원나라에 조회하는 나라가 80여 개국인데, 짐이 그대 나라처럼 예로 대접하는 것을 보았는가.”
가출한술래 24-04-27 19:51
   
잘봤습니다
Balzac2 24-04-27 20:19
   
잘 봤습니다
ㅇㄹㄴ 24-04-27 21:57
   
잘봤습니다
또돌이표 24-04-27 22:08
   
일본인들이 더 대단하지 않을까?
그들은 그들 나라가 일본이기 전부터 한반도에 임나일본부를 뒀다고..
자그마치 600년 후에 일본이라는 국호가 사용될걸 미리 알았던거야.
또돌이표 24-04-27 22:10
   
아 맞다 중요한거 하나가 있어요.

거란과 몽골은 민족의 이름이 아닙니다.
어느 지역에 있던 사람들이에요.
부엉이Z 24-04-28 00:47
   
잘봤어요........
바두기 24-04-28 01:21
   
잘봤습니다.
자기자신 24-04-28 03:24
   
잘 보았네요
에페 24-04-29 09:25
   
잘봤습니다
carlitos36 24-04-29 15:17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