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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1-15 17:20
中 누리꾼 흥분 "역시 한국어 기원은 중국"
 글쓴이 : 배리
조회 : 8,737  



14일 중국 언론들이 일제히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인용해
"일본어, 한국어, 몽골어 등이 중국 북동부의 농부들에게서 유래됐다"고
보도하자 중국 누리꾼들이 "중국이 너무 위대하고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누리꾼들은 "한국어의 기원이 되는 중국이 자랑스럽다", "이 기사를
본 한국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것이다", "티베트어 영화를 봤는데 
일본어나 한국어인 줄 알았다", "역시 우주의 중심은 중국" 등의 댓글을 
올려 많은 공감을 받고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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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MIND 21-11-15 17:23
   
인류의 기원 아프리카 라는 논문에 열광하는것이 훨씬 더 낫겠다..
양동재떨이 21-11-15 17:23
   
한글과한국어 공정의 본격화를 예고 하는군
문삼이 21-11-15 17:24
   
저 바보들은 저게 무슨 내용인줄도 모름...

결국 중국 동북부 지방이 한민족 땅이란 말인데...쯧쯧...

현재 영토로 과거 역사를 재단하려하다니...
     
왕덕배 21-11-15 18:07
   
ㅎㅎㅎ 이게 맞는거죠
저 짱.깨들은(이게 금지어라니..) 침략을 당해놓고도 침략한 그들의 역사가 지들꺼라고 믿는 ㅄ들이라
     
대팔이 21-11-16 19:50
   
현재 영토로 과거 역사를 재단하는게 여러 xx공정들의 핵심이념입니다...
동방불펜 21-11-15 17:25
   
중국에서 기원한게 아니라 거기가 과거 고조선 영역 아닌가.. 한족하고는 아에 다를텐데
쉿뜨 21-11-15 17:26
   
8000년 전에 중국이 어딧냐 멍청이들 ㅋ
GootShot 21-11-15 17:27
   
쪽팔린줄 모르는  짱/깨  새끼들
저렇게라도 한국 문화 묻어가고 싶겠지
고기자리 21-11-15 17:27
   
저 지역이 고대 동이족 단군조선의 중심부였는데.. 근데 더 소름인건 일주일전 쯤 유투브로 이 내용을 보고 영상 제작사가 중국이 동북공정안에 이 것을 포함시켜 억지 주장할거라고 예상하던데 그대로 갔네 ㄷㄷㄷ
박수세번 21-11-15 17:29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가 미국에서 기원한거네..
안사요 21-11-15 17:31
   
길바닥에 똥이나 싸지르능 생퀴들이
뭔 개소리 까징 졸라 찰지그러 한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찍수니 21-11-15 17:32
   
무식한데 소신이 강하면 정말 대책이 없는데...!
그런데 저 것을 콩사탕은 이용해 먹지~
중국이 문화발전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tpza56qw 21-11-15 17:34
   
ㅋㅋㅋㅋㅋㅋ 망상의 대륙
비이콘 21-11-15 17:38
   
헛발질을 저렇게 잘하니...인구가 14억이나되도 해외에서 축구선수를 귀화시키지..하여간 등쉰덜..절레절레.
노원남자 21-11-15 17:44
   
한국인이라면 당연 고조선영역이 발해만근처요동부근에서 시작했다는건 인지하는편이라 그냥그러려니하지만 지금 지들땅이라고 저리좋아하는 중국인들보면 답없네..
JaneDoe 21-11-15 17:45
   
응, 늬들 한족 쳐바르던 북방민족ㅋㅋㅋ
참새의눈물 21-11-15 17:48
   
저 짱dog식 논리대로라면  현재 북미를 앵글로 색슨이 먹었으니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의 언어는  영어에서 나온게 됨.
스베타 21-11-15 17:53
   
응 거기 우리땅 ㅄ 들...ㅋㅋ
이궁놀레라 21-11-15 17:57
   
ㅋ 거기가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곳이군
가생이13 21-11-15 18:03
   
쟤네... 좀 모자란거 아님??
오히려 저거는 고대 요하강, 발해만 일대가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의 영토였다는걸 확인사살 시켜 주는 건데...
이건 지들이 동북공정하려는 부여,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가 누구의 역사인지 똑똑히 방증하는거고

어떻게 해석을 하면 한국어의 기원이 중국이 되고 중국이 위대해지는거지?
몽골, 만주족에게 지배당하기 전에는 만주랑 아무상관도 없던 것들이
대박도령 21-11-15 18:08
   
아이구 저런... ㅋ~

그래서 어쩌라고~~
나만의선택 21-11-15 18:12
   
모지란 짱퀴벌레 짱 깨 새퀴들 ㅉㅉㅉ

왜 우주의 기원이 중국 이라고 하지 병 신들.
thenetcom 21-11-15 18:18
   
그럼 중국어 기원은 인도차이나 반도가 아닐까.. 역시 만주의 주인공은 한민족이었어..
호로파 21-11-15 18:25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간 고조선 우리 조상들 영토다 이놈들아 ㅋ 내놔 ㅋ
박카스 21-11-15 18:26
   
저런 멍청한 놈들 ㅋㅋㅋ
그래서 그 지역이 너희 한족놈들 영역이 아니라는거다
나중에 알아차리고 또 모른척 하겠지
골리앗 21-11-15 18:32
   
국제공인 밉상
BTSv 21-11-15 18:35
   
발음도 못하면서 중국기원 ㅇㅈㄹ
우유크림행 21-11-15 18:35
   
거지같은 새끼들
저토록 개좇같은 애미뒤진짓만 골라서 하는데
오히려 중국인을 혐오 안하는게 차별이지
user386 21-11-15 18:41
   
언어는 시간에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어순이나, 너, 나, 엄마, 아빠등 인칭대명사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잘 변하지 않는다. 중국어와 한국어, 일본어, 몽골어등의 어순은 완전히 다르다.
삼한 21-11-15 18:45
   
동아병부시절 천년 겪어봐야겠구만.
전격전 21-11-15 19:02
   
그 때는 쭝꿔 땅이 아니었다네. 이제 고토를 회복하면 이치에 맞겠네
가새이닫컴 21-11-15 19:04
   
아이고 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마전쟁 21-11-15 19:30
   
저 짱꿜라들은 그반대라는 걸 이해못하나봄. 그지역이 사실은 우리조상들이 지배하던 우리땅이었다는 이야기인걸 ㅋㅋ

하긴 뭐 저 짱꿜라들은 지들 유리한대로만 정신승리 잘하지

징기스칸한테 지배당해서 노예로 살던 놈들이 징기스칸은 지들 역사라고 자위하지

누가봐도 징기스칸은 몽골의 역사고 짱꿜라들은 몽골한테 점령당해서 노예로 산 것 뿐이었는데
촐라롱콘 21-11-15 19:41
   
8,000년 전이라면 그 당시 한족들의 조상들은 오늘날 중국 북서부에 가까운

황하 중상류 지역인 섬서성-산서성 일대가 나와비리였던 시절이었는데.....??
렛츠비 21-11-15 19:41
   
어떻게 논리가 저렇게 가지?
다같은생수 21-11-15 20:44
   
가짢구나 ㅋㅋ
ZeroSun 21-11-15 20:47
   
징기스칸도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중공인들.
그럴일은 없겠지만 만일 인도를 점령하면 석가모니도 중국인,
간디도 중국인이라고 할 놈들임.
slayer 21-11-15 20:50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姓셔ᇰ〮이〮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
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
===============
상상은 자유인데 우리 갓종대왕님께서 훈민정음을 만드실때 첫 문장부터 중국어랑 선을 제대로 그어버렸네ㅋㅋㅋ
이렇게 중국이 중국해버리니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비호감은 쌓여만가겠네ㅋㅋㅋㅋ
BJYJ 21-11-15 21:15
   
우리 덕분에 겨우 벼농사 지어 먹게 된 놈들이 고차원적 언어활동을 퍽이나 했겠다.. 참 내.
굿잡스 21-11-15 21:17
   
ㅋㅋ

우리의 언어는 알타이어 계통의 공통점이 있기도 하고

기저에 한국어만의 특징도 강해서 독립어족으로 보는 추세이긴 한데

북방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더 큰 흐름의 저런 연구도 나왔다는  기사.

분명한건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요하 연해주 한반도는

거의 동일 생활문화권인 독자적 빗살 무늬토기에

정치체화되는 청동 철기시대에도

수천년 우리가 구축한 고조선 고구려 동방문명권의 주 생활 역사무대였다는건

별 논란도 새삼스러울게 없는 이야기이군요.

(■ 실크로드보다 북방의 초원길이 더 이른시기

활성화 동서양 문명과 소통의 하이패스 즉 고속도로.

동아시아 문명사에서

수렵에서 저장 개념의 혁명적 신석기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의 발명지인 한반도를 중심으로 요하로 북방 초원길(이런 동서양 문명의 하이패스 길)을 따라 유라시아로 이미 점차 교류.

이런 기반 위에 중동의 채도 즉 채색 토기가 요하일대로 전파되어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보다 앞서 출현.

즉 유럽의 그리스 로마 지중해에 비견되는

동아시아의 서해 요하 즉 고조선 선대  문화권 지역이

빗살무늬토기문화+채도 문화+거석문화(우리는 적석총 고인돌등 이에 반해 서토 하한족은 땅  파고 묻는 매장 풍습)+세석기문화가 유일하게 중첩되어 나오는 엄청난 신석기 교차 지역 문화

이런 발달한 신석기 요하문화와 이후 청동 철기등도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보다 더 이른 시기에 진화.




■ 東海之內 北海之偶 有國名曰 朝鮮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 (고)조선


“동해 안쪽, 북해(발해) 모퉁이에 (고)조선이란 나라가 있었다”

ㅡ 산해경(춘추전국시대 편찬된 지리서)

■요하 일대 고조선 위치 기록



현대의 쭝국(쭝공)이라는 특정 국가명사와는 달리

■ 근대 이전의 쭝국이란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들을 정복 지배 군림하면 누구나 될 수 있던 추상 지리 명사였군요.

그리고 그때마다 이민족의 복식등 문화들이 강제 주입 중구난방화(현재는 본인들도 본인게 몬지 제대로 모르니 한복등 주변국에 온갖 해괴한 역사, 문화공정질)

서토국 (하)한족= (북방과 동방 이민족에 수시로 털리고 정복 당한)피지배 노예사로 점철.


■[한자의 원형] 복골 및 갑골문자

https://que-sais2020.tistory.com/m/384?category=924910


■ 요령성 평강지구에서 출토된 ‘새’ 토템족이 ‘곰’ 토템족, ‘범’ 토템족, ‘이리’ 토템족을 휘하에 거느린 동안의 청동장식.

https://news.v.daum.net/v/20190911104226227

요령성 평강지구에선 우리 고조선 건국 신화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기원전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하늘숭배를 상징하는 새토템 천족이 예맥계를 상징하는 호랑이족과 곰족을 아우르면서 몽골의 전신인 실위와 산융등의 토템인 이리(늑대)를 하위로 거닐고 있는 청동 장식(현 대한민국 대통령의 상징도 봉황)


■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 도표로 한눈에 보는 천년 사직 고(구)려(KOREA)의 위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1002&logNo=30152299778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 요동(KOREA)에서 헛되이 죽지 않으리(无向辽东浪死歌)'

http://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wr_id=190581



■ 서토 북조사를 연 북위도 고(구)려의 준식민지급.

북위가 고구려와 동맹 강화를 위해 당시 고구려 귀족 가문과 혼인을 하는데 이 문소황후의 아들이 8대 북위 선무제로 등극하군요.

이후 지지 기반이 약했던 고구려계 선무제는

자신의 외삼촌인 고조와 고현을 불러 들이고 아예 고구려인만 따로 추대하는 고려국대중정(高麗國大中正)이라는 벼슬까지 만들어 북위 조정내에 고구려파벌 붕당을 만들어 장악해버림.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http://blog.naver.com/csred7/80130397982������


(이때문에 고(구)려(KOREA)의 장수태왕이나 문자명태왕이 서거를 하면 북위의 황제나 최고 권력자가 애도를 거행하는 기록들이 그래서 나오게 되는 역사적 배경)


겨울 12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그때 그의 나이는 98세였다. 임금의 호를 장수왕(長壽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효문(孝文)이 이 소식을 듣고, 흰색의 위모관(委貌冠)과 베로 만든 심의(深衣)를 지어 입고 동쪽 교외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하였다.
 
七十九年 夏五月 遣使入魏朝貢 秋九月 遣使入魏朝貢 冬十二月 王薨 年九十八歲 號長壽王 魏孝文聞之 制素委貌布深衣 擧哀於東郊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장수왕 79년(서기 491)


28년(서기 519), 임금이 돌아가셨다. 호를 문자명왕(文咨明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영태후(靈太后)가 동당(東堂)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했다.
 
二十八年 王薨 號爲文咨明王 魏靈太后擧哀於東堂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명왕 28년(서기 519


■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해 전체적으로 일본고사기들이 조작되었음을 밝혔다.


■ 여진(女真)의 추장은 곧 신라인인데, 완안씨(完顏氏)라 호칭하였다. 완안(完顏)은 한어(漢言)로 「왕(王)」과 같다.

ㅡ『송막기문』남송 홍호가 포로로 잡혀간 송 군주의

송환을 위해 15년간 대금의 유배생활을 보내면서 쓴 견문록.


■ 정강의 변 : 서토 송이 신라계 황제와 발해인 연합의 금나라에게 패하여 수도 변경(지금의 카이펑/개봉)이 함락되고, 송의 군주였던 휘종과 흠종 그리고 수많은 자녀들이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


女真酋長乃新羅人 (송막기문- 남송기록)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다")     
"其初酋長本新羅人" (몽골  금지(金志))     
(여진의  초기지도자는 신라인이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금사 (金史))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에서왔을 때  60세였다.)


중세 고려(KOREA) 서북 경계

https://www.incheo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4376


https://news.v.daum.net/v/20171113202247651


大金皇帝寄書于高麗國皇帝

"대금 황제가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 ㅡ帝王韻紀
굿잡스 21-11-15 21:17
   
■ 신석기 혁명, 빗살무늬 토기의 발명지.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https://news.v.daum.net/v/20171015140004655?rcmd=rn&f=m

 
■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 심양 정가와자 유적과 같은 계열인

충남 예산 나팔형 동기의 용도 복원안

"이번 전시에서 필자가 가장 오랫동안 관찰한 유물은 '나팔형 청동기'이다. 

글자 그대로 나팔 모양을 닮은 청동기인데 암석 거푸집이 아니라 밀납 원체를 사용한 제작이다. 흔히 '실납법'이 라고 한다. 이와 흡사한 청동기는 놀랍게도 만주 심양의 정가와자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정가와자 유적, 특히 3319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고조선의 왕묘이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한반도의 청동기문화가 만주의 고조선 청동기에 계보가 있음을 시사한다 ㅡ정인성 교수

http://m.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431



■ 고조선의 대표적 유물인 비파형 동검의 상한 연대.


우가촌 상층문화와 상마석에서 얻은 4개의 교정연대값 사이에 커다란 편차를 보이지 않고 있는 까닭에

■ 우리는 비파형동검과 관련된 이들 유적의 상대연대를 기원전 16~14세기로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거꾸로 추론하여 볼 때, 그와 같은 시기추정은 이른 시기의 비파형동검 유적의 연대를 반영해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비파형단검을 초기 고조선의 대표유물로 본다면, 종래 기원전 10세기로 여겨왔던 그 상한연대가 더 위로 끌어올려져야 마땅하리라 생각된다

ㅡ고조선의 성립배경과 발전단계 시론(한창균)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setId=-1&prevPage=0&prevLimit=&itemId=kn&types=&synonym=off&chinessChar=on&levelId=kn_033_0010_0030&position=-1


■ 최근의 비파형 동검의 상한 연대는 기원전 10세기를 상회하는 연구 주장들이 나오고 있고

초기 청동문화는 기원전 20세기로까지 소급.

나아가 고조선 문화와도 연계된 적봉 지주산 하가점 하층문화기의 교정연대값은 2410±140BC로까지  나오고 있군요.
굿잡스 21-11-15 21:18
   
■"제천행사 '무천'은 동예 아닌 고조선 풍속"


'돈황문서' 고구려사료 첫 발견


돈황문서의 하나로 포함된 토원책부(兎園策府)라는 글 주석에 고조선의 풍속으로 10월에 제천행사인 무천이 열렸고, 출정에 앞서 소를 잡아 발굽의 형상으로 길흉을 점치던 우제점(牛蹄占)이 있었다는 기록을 새로 발견했다.

현재까지 국사교과서에는 고조선 이후 동예가 '무천', 부여는 '영고(迎鼓)', 고구려 '동맹(東盟)'이란 제천행사를 지낸 것으로 실려 있다.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050614.010141015020001


군사적인 행사가 있으면 역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소를 잡아 그 굽을 관찰하여 길흉을 점치는데, 굽이 흩어지면 흉한 것으로 여기고, 합쳐지면 길한 것으로 여긴다.

ㅡ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우제점)

위략에 말한다 :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며, 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번도 파괴당한 적이 없다.

그 인장에 이르기를 '예왕지인(濊王之印)'이라고 하였고, 나라에 예성(濊城)이라 이름하는 옛 성이 있으며, 대개 본래는 예맥(濊貊)의 땅으로, 부여가 그 중의 왕이 되었으니, 스스로를 가르켜 '망인(亡人)이라 한 점에도 이런 까닭이 있을 것이다.


ㅡ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


“단군(檀君)은 실로 동방의 천황(天皇)인데,

그 사우(祠宇)도 잘 정비하고 있는지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근신(近臣)을 보내 치제하고자 하니 입시한 승지가 가서 거행하고, 사전(祠殿)이 허물어진 것을 수리하지 않았으면 또한 본도(本道)에 신칙하여 즉시 수리한 다음 장계로 보고하도록 하라.”


檀君, 實爲東方之天皇矣。其祠宇, 亦安保其能修治耶? 欲爲遣近臣致祭, 入侍承宣, 其往擧行, 祠殿如不修廢, 亦爲申飭本道, 俾卽修治, 仍爲狀聞, 可也。


ㅡ승정원일기  영조 8년
굿잡스 21-11-15 21:22
   
■ 소하연 문화(기원전 3000년∼기원전 2000 년)에서 출토된  '인형방식’의 복식양식

※ 머리양식 머리를 틀어 올려 옥고를 쓴 양식

※ 웃옷양식 소매 폭이 넓은 웃옷에 둥근 장식을 한 양식

※ 아래옷양식 바지 위에 짧은 길이의 기하학문양이 있는 치마를 입은 양식

※ 허리띠양식 네모난 帶飾을 단 양식


홍산문화 사람들은 상투 머리를 하였는데 그 위를 옥으로 장식하거나 또는 옥으로 만든 머리덮개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머리양식은 신분을 상징하며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했던 머리 갖춤새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머리 갖춤새는 소하연문화 등의 발전시기를 거치며 고조선으로 이어져 한민족의 고유한 머리양식으로 자리잡으며 여기에 장식이 더해져 점차 화려해져 갔다.

‘인형방식’은 넓은 소매의 웃옷을 입고 있다. ‘인형방식’의 웃옷에는 둥근달개장식이 보이는데 이는 홍산문화로부터 비롯되어 일관되게 고조선 영역에 전반적으로 확산되었던 고유한 장식기법이다.

이러한 특징을 복식문화의 한 시대적인 조형적 양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고조선 이후 열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이후 고구려의 불꽃문양을 표현한 금동관등에도 표현되는 것으로 보면 태양신을 섬기는 천신신앙의 문화적인 전통이 계승되어진 것으로 해석되어진다.

‘인형방식’의 허리부분에는 허리띠장식이 보인다. 이러한 허리띠장식은 이미 홍산문화유적 등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후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등의 초기유적에서 보여지며 삼국으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복식사와 고고학 연구자들은 한국 고대복식에 나타나는 허리띠장식은 본래 기마 유목민들의 풍속이었던 것이 중국으로 들어온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양식을 배운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소하연문화의 허리띠양식은 이러한 주장이 모순임을 잘 밝혀주고 있다.

이처럼 ‘인형방식’에 나타나는 머리양식⋅복식양식⋅착용기법⋅장식양식과 기법⋅문양 등은 한국 고대복식의 원형이 중국이나 북방 호복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종래의 통설화 된 견해들이 모순임을 새롭게 밝혀주고 있다.

ㅡ소하연(小河沿)문화유적 출토 ‘인형방식(人形蚌飾)’에 보이는 고조선 복식(朴仙姬) 중
굿잡스 21-11-15 21:23
   
■ 고조선 초기 무덤유적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식품의 출토상황으로부터 다음의 내용이 정리된다.

첫째는 고조선의 비파형동검문화인 하가점상층유적에서 출토된 장식단추는 그 양식과 종류에서 고조선의 하가점하층문화와 서로 계승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고조선의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지는 소하 
연문화의 ‘인형방식’ 웃옷에 나타난 둥근달개장식의 사용이 홍산문화로부터 비롯되어 일관되게 후기에 이르기까지 고조선 영역에 전반적으로 확산된 것은 복식문화의 시대적인 조형적 양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달개장식의 사용이 고조선 이후 여러나라시대에 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이후 고구려의 불꽃문양을 표현한 금관과 금동관200)등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태양신을 섬기는 천신신앙201)의 문화적인 전통이 계승되어진 것으로 해석되어진다. 



해모수의 (해)解는 하늘의 해, (모수)慕漱는‘머슴애’를 뜻하는 것으로 해모수는 해의 아들 즉 (일자)日子를 의미한다.208) 즉 고조선의 단군은 해의 아들이라고 불리었으며 태양신을 상징한다. 따라서 고구려는 홍산문화로부터 비롯되고 소하연문화를 이은 고조선문화를 계승하여 태양을 숭배하는 전통과 장식기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원형의 달개장식을 매개체로 하여 태양의 기능인 열과 빛의 모습을 복식 등에 표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오랜 기간 통시적인 발달양상을 보이는 장식기법은 중국이나 북방지역의 복식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한민족의 고유양식인 것이다.

소하연문화의 ‘인형방식’에 나타나는 복식양식과 장식기법은 한국 고대복식의 원형이 중국이나 북방 호복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종래의 통설화 된 견해들이 모순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아울러 홍산문화 복식의 특징적 요소들이 소하연문화로 이어지고 다시 고조선의 고유한 복식전통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옥과 청동 등을 재료로 한 원형의 장식기법은 홍산문화의 복식 전통을 이은 고조선의 고유한 장식기법으로 한민족 복식의 문화적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ㅡ소하연(小河沿)문화유적 출토 ‘인형방식(人形蚌飾)’에 보이는 고조선 복식(朴仙姬) 중
굿잡스 21-11-15 21:24
   
■ (동북방의 거란, 말갈(여진)등과 열도의 왜(Jap)등에) 수천년 동방문명권을 구축 군림해온
우리 고조선 고구려문명권의 영향력에 대한 자각.


고(구)려(KOREA)의 토대가 되는 초기 고조선 토착재지 5부는

이후

신성한 태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점하며 천하를 지배하는 5부 행정 대도시 문명으로 발전 이후

 남북국시대에 발해 5경과 신라 5소경에 이런 발해의 5경 체계는

다시 북방의 패자가 되는 요의 5경 체계로

대금  역시 고구려계 국무총리가 송을 멸망시키고 북경에 중도 건설을 총지휘. 이후 쿠빌라이는 이런 대금이 닦아놓은 서토 강북을 기반으로 몽골 내부 분열시기에 물자를 통제하면서 대칸에 오를 수 있는 실질적 힘이 되군요.(이를 바탕으로 남송 정벌)

※ 오늘날 서토국의 수도가 북경이 된 연원.


6세기 가장 선진적이라는 열도의 풍경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07&wr_id=179751&page=


Jap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

https://www.dogdrip.net/userdog/296559956



오늘날 도시 배수로와 큰 차이가 없었던 신라 서라벌의 도시 인프라.


■ 유럽 최대 도시라는 로마보다 더 컸던 세계 4대 대도시 중 하나였던 100만의 거대 신라 서라벌.

서라벌은 바둑판 형태의 정렬된 계획도시 아래

일정 블럭의 방이라는 각 구역내 공간에는 각 집안내 우물 옆에 배수로가 집밖 담장의 소배수로를 통해 다시 대배수로 연결되어 있는게 확인되군요(길도 마차가 단니는 도로와 사람이 단니는 인도가 구분)

천년의 신라 수도였던 서라벌은 남북국시대 전성기를 맞으며 지금의 수도 서울 광역시(거대 메트로 폴리탄)처럼 지속적으로 팽창(삼국시대 이미 우리는 유럽 최대 도시인 로마에 비견되는 고구려 3경, 백제 사비성, 신라 서라벌의 5개 이상의 거대 대도시 체재를 구축)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unayoon715&logNo=220882810189&proxyReferer=https:%2F%2F


서라벌 디지털 복원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2096873


발해  

당나라 산둥 등주 공격  

장문휴는 732년(인안 13) 무왕의 명령을 받아 수군을 이끌고 산둥 반도에 있는 당의 국제무역항 등주를 공격해, 당의 동방정책에 큰 타격을 주었다.  

발해 무왕의 대외팽창에 위협을 느낀 동북만주의 흑수말갈이 발해와 우호관계를 단절하고 당과의 연결을 꾀하여 발해를 위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무왕은 흑수말갈의 정벌을 결정했으나 무왕의 동생 대문예가 발해와 당 사이에 전면전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흑수말갈의 정벌을 중지시키려다가 실패하고 당으로 망명했다.당에 대한 강경책으로 돌아선 발해는 수군을 동원하여 등주를 공격 초토화시켜버리고 육지로는 요서로 밀어버림. 


   
흑수의 땅은 모두 발해에 복속되었다.  
-발해고 무왕-  

발해가 점차 강성함에 따라 흑수 역시 그 소속이 되었다.  
-당회요 말갈-  



'고려(KOREA)국왕대흠무언(高麗國王大欽茂言)'   

≪속일본기(續日本紀)≫ ㅡ남북국시대 발해 문왕(文王) 대흠무가 왜국에 보낸 국서에.


천통 인안 대흥등 독자적 연호 사용.


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당대 서토 당나라 장안성의 최대 건물인 함원전의 11칸보다 큰 무려 19칸)





USA 캘리포니아 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discover誌“1998년 6월호「일본인의 뿌리」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인 조몬인.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켰다.”


"Jap 가타카나 기원은 신라 향찰·이두"  

히로시마대 교수  

http://blog.daum.net/damule/8881879
굿잡스 21-11-15 21:24
   
서토 최초의 실체하는 상나라 은허 유적 발굴을 총지휘했던 푸쓰녠(부사년·傅斯年)은

“상나라는 동북쪽에서 와서 흥했으며, 상이 망하자 동북으로 갔다”

장발영(張發潁)의 저서 <봉황토템 동이인 및 그 문화의 공헌>- <시회과학집간>2001년 2기- 에서

동이족 사람들은
- 깃털달린 활과 화살을 발명했으며,
- 문자를 창조했으며,
- 청동기를 제작하고,
- 철을 단련했으며,
- 배(舟)와 수레(車)를 만들었고,
- 농업을 발전시키고 치수(治水)를 하였다.


상나라 자체가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들이 세운게 아니라 동북방에서 남하한 이민 동방족의 정복 왕조사에서 시작.
ashuie 21-11-16 00:10
   
우리조상의 땅에서 기원된게 당연한거 아닌가?
진짜 비유유융신들인거야?
예맥이 만주민족이었던것도 모르나?
기간틱 21-11-16 07:21
   
중국 이란 나라의 명칭이 낙양 근처 지름 200km 에서 나왔음.
그정도가 정말 지들 말로 가운데 중자 써서 가운데 나라임.
이외 나머지 지역들은 각기 다른 종,부족들 대략 100 개가 넘는 씨족들이었어요.
다 죽이고 지금 56 개 민족만 남았습니다. 그나마. 짱,께 공상당 선전에 한? 족이란 명칭도  우리 한나라 한을 음차한  한 족입니다.
만리장성을 왜 만들었을까요?.
오른 쪽은 모두 우리 선조들 땅이었습니다. 반드시 찾아와야합니다.
바퀴벌래 짱,께 새끼들이 주장하는 한문도 지들 거 아닙니다.
멍때린법사 21-11-16 08:35
   
맞아.. 부여등 만주일대 모두 한국땅이지.. 무슨 발을 동동 굴리남.. 지난 과거의 사실확인이지.
seharu77777 21-11-16 12:18
   
저러니 ㅂㅅ국가 소리듣지 만주 및 동북지방은 수천년간 우리 민족 터전이고 뿌리이다. 잠시 니들이 강탈했지만~ 니들것이라 우기면 안되지~ 돼지 피지배 족속들이~~ 느그들 한자는 우리 동이족 조상님들의 은나라에서 만들었는데 개소리 시전하기는 영원한 피지배 노예 민족
     
tuygrea 21-11-16 19:04
   
과거엔 이민족노예 지금은 공산당노예 5000년 노예민족 지나蚛蝈

진-튀르크
수, 당-튀르크, 퉁구스
요-거란족
금-여진족
원-몽골
청-만주족
          
ashuie 21-11-16 19:28
   
중국은 자꾸 아니라고 우기는데
수양제 시절에도 당시 신하들과는 의사소통이 안될정도로
황제와 신하들의 언어에 괴리가 있었고,
수양제의 먼친척인 당나라 황실도 유목민의 후손이라는 여러 증거가 있죠
당태종의 오른팔이자 인생의 동지인 장손무기부터가 대놓고 북방이민족이니.
이불까라라 21-11-16 17:29
   
참 무식하고 멍청한 족속들.
학자라는 것들은 민족자긍심도 없고 명예도없고.
그런건 분서갱유랑 문화대혁명때 다 가져다 버린건 알고 있다만서도
오로지 공산당에 충성만있는 뇌가없는족속.
tuygrea 21-11-16 19:01
   
응 거기 원래 동이족 땅이었어~
쩔이 21-11-16 19:25
   
이 븅신들은 유럽도 시저가 웬만한땅 다먹었었으니까 이탈리아가 유럽은 내땅이라 한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거뷕이 21-11-16 20:39
   
예전 세종대왕 이전의 한글을 말하는건지 지금 한글은 한문을 아예 안쓰는 체계가 다른 언어인데....
쟈들은 눈깔을 달고서 한글하고 한자하고 구분을 못하나.... 그냥 봐도 전혀 다른 언어 아냐... ㅋㅋㅋ...
심지어는 어순도 니들 언어하고 정 반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