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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5-19 11:32
[한국사] 한국 고대사 문제의 출발점3ㅡ>고조선1
 글쓴이 : 하이시윤
조회 : 294  

고조선의 국가구조와 성격
ㅡ윤내현, 한국고대사신론 총결에서 발췌

고조선은 종래에 한국 역사학계가 인식하였던 것처럼 한반도 북부의 대동강 유역이 중심이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안이 그 중심이었다. 고조선의 강역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동북부에 있는 난하의 상류와 중류 및 창려현 갈석을 서쪽의 경계로하여 하북성의 동북부 일부와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전부 및 한반도를 포함하고 있었다

고조선은 중국의 전국시대인 기원전 3세기 초경에 연국의장수인 진개에 의하여 넓은 지역을 침략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연국 내부의 사정으로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진개는 오래지 않아 후퇴를 하였다. 이때 고조선은 대부분의 영토를 회복하기는 하였지만 국경선에는 약간의 변화를 가져와 난하 서부연안에 설치되어 있었던 연국의 국경 최전방 초소가 난하의 동부연안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후 고조선이 연국을 침공한 사건도 있었지만 국경선에 변화를 가져온 것 같지는 않다.

그러던 것이 기원전 3세기 말 서한제국이 건립되었으나 아직 국내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얻지 못하였고 주변의 이민족을 제압할 능력이 없었던 서한정부는 난하의 동부연안에 설치되어 있었던 고조선과의 국경선도 수비할 능력이 없어서 난하의 서부연안으로 이동하고 진개의 고조선 침략 이전에 설치되어 있었던 국경 초소를 수리하여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결국 고조선의 서쪽 국경은 진개전쟁 이전의 상태인 난하의 상류와 중류 및 창려현 갈석으로 회복되었는데 이 국경선은 그후 위만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서한제국과의 경계가 되었다.

고조선의 강역이 지금의 중국 하북성 동북부에 있는 난하의 동부연안으로부터 만주 전역과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이었으므로 그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선사문화는 고조선 지역에서의 인류 초기 사회의 전개과정을 시사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의하면 고조선 지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에 끝나는 홍적세 기간에 무리사회 단계를 거친 후 기원전 5천년 이전에 부족사회가 확산되었으며 기원전 3천년 경에는 이미 추방사회 단계에 진입하여 있었다. 이러한 고조선 지역의 사회 변화는 중국 지역에서 빠른 시기에 부족사회로부터 추방사회로의 사회 변화를 보여 준 황하 중류 하류 유역과 장가 하류유역의 사회 변화와 대체로 그 시기가 비슷하다. 따라서 고조선 지역에서의 초기의 사회 변화는 중국 지역보다 결코 뒤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고조선족의 조선이라는 명칭 사용 시기와 추방사회로부터 국가라는 사회 단계 도달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당시의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문헌의 기록들을 종합하여 볼 때 기원전 9세기 이전에 이미 고조선이 국가 단계에 진입하였음이 분명다.

그리고 고조선 지역에서는 기원전 23.4세기 경에 청동기문화가 개시되었는데 이것은 황하 중류유역의 청동기문화 개시보다 연대가 수백년 앞서는 것이다. 고조선 지역의 청동기 문화는 기원전 9세기 경에 이르러 비파형동검으로 특징지어지는 청동기문화 단계에 접어들고 후에 이것이 세형동검으로 발전하였다.

고대국가는 청동기시대에 성립되는데 고조선의 건국연대인 기원전 2333년이 고조선 지역의 청동기 개시연대와 일치하는 것은 고조선이 초기부터 국가단계였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고조선은 기원전 9세기 이전에 이미 동북아세아의 왕자로 군림하여 중국의 서주왕실을 방문하여 통혼관계를 맺고 정상외교를 벌여서 통치영역을 획정하였던 것으로 문헌에서 확인된다. 

이와 같이 고조선이 대국으로 등장한 시기와 비파형동검으로 특징지어진 청동기문화의 개시연대가 일치하고 있는 것은 고조선의 성장과 청동기의 발달 사이에 상호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고조선 지역이 본래부터 중국의 황하 유역과는 다른 독립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은 시하는 바가 크다.

고조선은 고조선족을 중심으로 하여 추 ,맥, 예, 진번, 임둔, 발, 숙신, 양이, 양주, 유, 청구, 고이, 고죽, 옥저 등 대부족의 연맹체적인 성격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이들 사이에 비교적 대등한 관계가 성립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전쟁을 치르고 농경을 위한 수리의 이해간계 및 교역의 통체 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고조선족의 군장은 정치적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조선의 국가구조를 보면 중앙에는 고조선 전지역의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인 평양성 또는 왕검성이라 불려지는 도읍이 있었고 지방에는 일정한 지역의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였던 대읍이 있었으며 대읍의 주변에는 서민들의 거주지인 소읍이 분포되어 있었다. 종교적 정치적으로 소읍은 대읍에 종속되어 있었고 대읍은 도읍인 왕검성에 종속되어 있었다.

따라서 고조선의 국가구조는 소읍 대읍 왕검성이 누층적으로 층서관계를 형성한 읍제국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읍의 거주인들은 혈연관계로 형성된 집단인 씨족 또는 부족이었으므로 읍의 누층적 관계는 바로 씨족 또는 부족의 층서관계를 뜻하는 것이다.

왕검성에는 최고 지배족인 고조선족과 중앙의 통치기구에 참여한 연맹부족의 대표자들이 거주하였고 대읍에는 추 ,맥, 예, 진번, 임둔, 발, 숙신, 양이, 양주, 유, 청구, 고이, 고죽, 옥저 등 옛 문헌에 등장하는 대부족이 거주하였으며 소읍에는 소부족 또는 씨족이 거주하였던 것이다.

고조선의 통치방법은 군사력에 기초한 무력, 행정조직을 중심으로 한 정치력 등이 주요한 역할을 하였겠지만 그것은 종교적 권위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고조선의 통치자인 임금은 종교적 최고 권위자인 단군을 겸하고 있었으며 고조선의 제후인 대부족의 군장을 비롯한 각 부족의 군장에게 규를 비롯한 예기를 하사하고 종교의식인 제사를 분사해 주어 연맹부족과 신정적 결합을 꾀하여 종교적 권위에 있어서도 층서를 이루도록 하였던 것이다. 결국 고조선의 임금은 정치적, 종교적 권위를 모두 장악함으로서 신권통치가 가능하였던 것이다. 고조선은 군사조직 행정조직 종교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거기에 상응하는 경제기반으로서 토지제도와 징세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문헌에서 확인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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